이쪽을 향해서 위협적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던 양아치는 일순간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림자 속에서 뻗어나온 손길이, 그의 어깨를 덥석 붙잡아 으스러트렸기 때문이다.
“아아아악!!!!”
마치 공업용 바이스처럼 조여지는 손아귀 아래에서 무언가 망가지는 소리가 났다.
빠드득-
“끄으윽!!!!”
관절이 뒤틀리는 고통을 견디지 못한 양아치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그렇게 순식간에 상대를 제압해 낸 누군가가, 그림자 너머에서 한 걸음 벗어나며 모습을 드러냈다.
어두운 골목 사이에서 황금빛 눈동자를 빛내며 다가오는 그녀는 마치 야생 속 천부적인 사냥꾼을 연상시켰다.
소리도 없이 다가와서 찰나간에 목표를 제압해 내는 모습이 그랬다.
“끄으윽!!! 놔! 이거 놓으라고!!”
그렇게 저항 한번 제대로 못 하고 무릎 꿇린 채 비명을 질러대던 양아치.
한참을 발악하듯 울부짖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황급히 품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한 뼘 정도 길이의 나이프를 잡아들고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이 씨발! 놓으라고!!!”
“……”
에스티는 무심한 눈으로 그 꼬락서니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휘두른 칼날이 그녀에게 닿을 찰나, 가볍게 손등을 휘둘렀을 뿐이다.
챙강-! 무언가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칼날이 똑 부러져서 날아갔다.
그 소리에 사내도 덩달아 덜컥 굳어버려서, 손잡이만 남고 깔끔하게 깨져나간 나이프의 단면만 아연하게 내려다보았다.
“흐, 흐억…..!”
그는 뒤늦게 상황 파악이 된 듯 사색이 되었다. 자신이 어떤 상대에게 덤볐는지 이제야 조금 실감한 모양이다.
에스티는 그런 양아치의 정강이를 다시 한번 걷어차서 넘어트렸다.
퍼억-!
“끕…!”
하지만 사내는 이제 숨을 죽인 채 비명조차 참아냈다. 반항할 엄두조차 사라진 기색이었다. 장착한 의체의 수준도, 기술도, 담력도, 모든 면에서 감히 맞설 수 없는 격상의 존재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직감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상대를 완벽하게 제압해 낸 에스티는 이제 이쪽을 돌아보았다.
“이브 님.”
마치 ‘이제 어떻게 처리할까요?’ 라고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는 잠깐 입술을 매만지며 고민하다가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음…… 아까 그렇게 말했죠? 여긴 CCTV도 없다고.”
무릎 꿇려진 채 멍하니 이쪽을 올려다보던 양아치는, 그 속뜻을 알아듣고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다급히 용서를 빌기 시작하는 것이다.
“자, 자, 잘못했습니다! 전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평생 반성하겠습니다!!!
“………..”
우리 둘 다 말없이 그를 내려다보자, 남자는 더욱 겁에 질려서 숫제 바닥에 이마를 쿵쿵 찧으며 애걸하기 시작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쇼!!”
딴에는 대단히 필사적인, 구차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게까지 완전히 납작 엎드린 태도를 보니 더 이상 되갚아주고 싶은 앙심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 가볍게 경고만 해두었다.
“만약에 우리가 다시 마주치면, 이 정도로는 안 끝나요?”
“….! 네, 넵…! 명심하겠습니다….!”
이제 가보라고 손을 내젓자, 남자는 후다닥 몸을 일으켰다.
퉁퉁 부어오른 정강이를 부여잡고 절뚝거리면서도 혹여나 뒤쫓아올세라 잽싸게 골목 안쪽으로 도망쳤다.
그렇게 비척거리며 사라지는 꼴을 지켜보다가 나는 말했다.
“항상 고마워요, 에스티.”
그녀 또한 언제나처럼 담담하게, 여상하게 대답했다.
“마땅한 제 일입니다.”
이렇듯, 그녀는 내가 외출할 때마다 그림자처럼 가까운 곳에서 항상 경호해주고 있었다.
사실 아까 낮에도 그랬다. 가게 안에서 저 양아치가 진상을 부릴 때, 언제든 그녀가 나서서 제압할 수 있었지만 내가 먼저 만류했던 것이니까.
아무리 상대가 진상이라도 일단 손님이니 폭력적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혹여나 사장님의 장사에 악영향이 갈까 봐 참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보는 눈도 없었다. 우연히 다시 마주쳤을 때, 차라리 잘 됐다고 내심 생각했다면 너무한 걸까?
“하아…..”
사실 지금껏 이런 일이 벌어진 게 한두 번조차도 아니었다. 이쪽의 겉모습만 보고 날파리처럼 꼬여 들었다가, 에스티에게 혼쭐나고 쫓겨난 양아치 숫자만 해도 벌써 기십은 넘었을 것이다.
개중에는 지금처럼 어중이떠중이 건달 수준이 아니라 진짜로 위험해 보이는, 소위 흉악범 같은 부류도 있었다. 또한 십수 명이 단체로 덤벼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누굴 상대로도 항상 가볍게 제압해 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경이로울 수준의 전투력이었다.
‘진짜로 원래는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이었을까?’
문득 궁금증이 생겨나기도 했지만, 이내 아무래도 좋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녀 정도의 실력자라면 적어도 이 거리에서 어떠한 불상사가 생기더라도 나를 충분히 지켜줄 수 있을 테니까. 그 사실만으로도 안심할 수 있었다.
만약 [기적]의 비밀이 노출되어서 기업 같은 거대 세력이 본격적으로 끼어들기 시작한다면 사정이 조금 다르겠지만….
‘에이, 설마 그런 일이 생기겠어?’
어쩌면 처음부터 너무 과한 걱정이었을지도 몰랐다.
따지고 보면 내 능력의 비밀을 아는 건 이 세상에 오로지 두 사람뿐이다. 에스티와 카일라. 이 둘만 입을 다문다면 전혀 문제없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두 사람 모두 남의 비밀을 함부로 떠들고 다닐 성격은 아니었다.
에스티는 기적의 위험성을 가장 먼저 경고해주었고, 당장 본인 스스로도 내 능력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카일라 역시 일전에 미리 연락해서 입단속을 단단히 약속받아 놓은 상태였다.
그러니 비밀이 새어나갈 걱정은 할 필요 없다고, 나는 분명 그렇게 확신했다.
단지,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그래도 항상 주의하셔야 됩니다. 본인 이외의 누군가가 아는 비밀은, 결코 영원한 비밀이 될 수 없는 법이니까요.”
언젠가 저렇게 이야기하던 에스티의 너무도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 때문에 당시에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지만, 솔직히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낙관했다.
‘에이, 설마….’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걷다 보니 어느새 숙소 앞에 도착했다.
“그럼 좋은 밤 되시기 바랍니다, 이브 님.”
“네, 에스티도 잘 자요.”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거리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처음에는 그녀와 동거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원래의 집도 소속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으니까. 완전히 죽은 사람 취급이라 계좌도 막혔을 텐데 머물 곳이 있을까 걱정도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외출하지 않는 밤중에는 늘 바쁘게 돌아다녔다. 이쪽이 숙소에 머물 때는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가, 외출할 때가 되면 귀신같이 알고 나타나 따라붙는 것이다.
‘대체 한밤중에 무슨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걸까?’
궁금했지만 사생활이니 깊게 캐묻지는 않았다.
나는 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와서 쓰러지듯 잠자리에 누웠다.
“하아…..”
그러자 단칸방 크기만큼 좁달막한 천장이 올려다보였다.
체감상 1평? 아니면 1.5평 남짓 될까.
내가 지금 머무는 숙소는, 침대 하나를 두면 방이 꽉 차버리는 공간이었다.
이럴 땐 가진 짐이 거의 없다는 게 차라리 다행이다 싶을 정도였다. 내가 원래 세상에서 자취하던 대학가 근처 원룸보다도 훨씬 협소했지만, 몸이 바뀌면서 체구가 작아진 것 하나만큼은 이런 환경에서 장점이라면 장점일까.
하지만 이런 비좁은 숙소조차도 이 도시 안에선 상당히 좋은 축에 속했다.
‘이것도 카일라가 신경 많이 써준 거니까.’
대부분의 서민들은 이보다 훨씬 못한 곳에서 지낸다. 세계관 설정상 초 과밀화된 대도시의 인구 탓에 집값은 상상을 초월했고, 구매는 커녕 월세조차 어마어마하게 비쌌기 때문이다.
소득 상위 1퍼센트의 상류층이 오메가 디트로이트 부동산의 95퍼센트를 소유하고 있으니, 서민 대부분은 어마어마한 임대료를 감당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만한 크기의 단칸방에서 한 가족 전체가 지내는 경우도 흔했다.
심지어 더 나쁜 경우는, 좁은 방 하나를 수십 명이 단체로 빌려서 공유하는 형태였다. 개개인의 잠자리를 철창으로 나누고 벌집처럼 천장까지 쌓아 올려, 그 침대 한 칸 한 칸마다 요금을 받는 것이 이곳의 일반적인 서민 주거 형태였다. 침대 하나가 집이자 생활 공간인 셈이다.
당연히 그 환경은 끔찍할 정도로 열악했다. 지친 인간과 싸구려 물건들로 가득 찬 비좁은 공간에서 청소나 위생 관리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벌레, 악취, 곰팡이가 들끓는 지저분한 곳에서, 사람들은 마치 닭장 속 가축처럼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렇게 비참히 지낼 바에야 차라리 조금 더 쾌적한 다른 도시나 시골로 이주하는 게 낫지 않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세상의 메가시티들은 대부분 이게 평균이었고 다른 곳에 간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다.
시골의 사정은 더 심각해서, 이제는 사람 하나 살지 않는 황무지와 유령마을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딱히 특별한 재난이나 사건 사고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극에 달한 도시 집중화 현상이었다. 그나마 고향을 지키던 노인들이 세상을 떠난 지도 수십 년이 흘렀고, 이후 모든 인구가 먹고살기 위해 도시로, 도시로 계속해서 이주했을 뿐이다.
전통적인 지방 경제 기반이었던 농수산업조차 도시 근처에 세워진 대기업들의 거대한 수경재배 타워에서 나오는 직공급 물량의 효율에 밀려난 지 오래였다. 그처럼 인구도, 일자리도 사라진 시골이 고스트 타운으로 변모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이렇게 주변 지역의 모든 인구를 빨아들인 오메가 디트로이트는 현재 하나의 거대한 도시 국가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여기서 절대다수의 일자리를 틀어쥐고 있는 대기업들은 그야말로 왕이나 다름없는 존재라고 볼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비밀이 새어나갈까 두려워하는 이유였다. 자본과 권력을 완벽하게 독점한 그들의 표적이 되는 순간,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테니까.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에스티의 경고 또한 허투루 흘려들을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후….”
이런저런 상념을 떨치며 잠자리에 누웠다.
그래도 오늘은 비교적 평화로운 밤인 것 같았다.
잠자리를 거슬리게 만드는 바깥의 총성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내일부턴 주말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일정 없이 푹 쉴 생각을 하니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지 않는데도 무슨 일인지 숙소를 찾아온 에스티가, 내게 전해준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브 님, 알려드릴 소식이 있습니다.”
“네? 뭔데요?”
그녀는 언제나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아찔한 이야기를 꺼냈다.
“현재 이 근처 거리에서, 의체 중독을 완치시키는 기적의 신기술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