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이 근처 거리에서, 의체 중독을 완치시키는 기적의 신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
에스티가 들려준 소식은 사뭇 충격적이었다.
“기적이라니…..”
혹시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하필 지금 이 시점에서 이런 소문이 퍼진 건…. 절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어떤 식으로든 내 능력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아 보였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새어나갔지? 비밀을 아는 사람은 에스티와 카일라, 고작 둘 뿐인데.’
자연스럽게 두 사람에게 의심이 향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둘 다 소문을 흘려봤자 이득 볼 게 거의 없잖아.’
[기적]은 실체가 증명된 힘도 아니라 뚜렷한 물증을 제시할 수도 없으니, 그런 막연한 이야기만으론 정보비조차 받기 힘들었다.
잘 쳐줘 봐야 푼돈이나 좀 벌까. 하지만 카일라는 고작 그 정도 이득 때문에 약속을 저버릴 사람이 아니었다.
원작 게임에서도, 훨씬 커다란 대가 앞에서도 동료에 대한 의리를 지켰던 인물이다. 그녀의 신의만큼은 믿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에스티는…? 그녀는 본래 게임에서도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이라서, 고작 몇 주의 인연만으로 인간상을 완벽하게 확신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내게 받을 것이 남아 있었다. 손상된 의체 치료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니, 지금 내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본인에게도 좋을 리 만무했다.
이 시점에서 정보를 흘릴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 생각할수록 점점 미궁 속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비밀이 새어 나간 걸까?’
혼자 고민해 봤자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이 문제를 아는 두 사람과 직접 만나 이야기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다시 방문한 해결사 사무소.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던 카일라는 이전보다 사뭇 쾌활해진 모습이었다.
“오랜만이네, 이브? 아르바이트 적응은 좀 잘하고 있어?”
오랜 지병을 떨쳐내서인지, 표정에 활기가 도는 듯했다.
“제니가 잘 대해주지? 내가 특별히 부탁했거든.”
반갑게 인사하는 태도 어디에서도 의심스러운 낌새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카일라 씨, 혹시 어디 가서 저한테 치료받았던 이야기 하신 적 있어요?”
“아니, 전혀! 무슨 소리야? 비밀 지켜주기로 약속했잖아.”
그녀는 질겁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내가 돈에 쪼들리는 뒷골목 해결사라지만 은혜는 똑똑히 기억해. 그것도 새 삶을 선물해 준 은인한테 그딴 짓거리를 했다면, 당장 내 손으로 혀를 뽑아 버려야지!”
그녀의 격한 부정은 진심으로 느껴졌다.
함께 온 에스티도 옆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건 단순한 동의 표현이 아니라, 그녀의 의안 스캐너가 카일라의 생체 반응을 분석해 거짓말이 아님을 확인했다는 신호였다.
덕분에 카일라에 대한 의심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지금의 상황을 그녀에게도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실은…. 최근 [기적]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디서 비밀이 새어나간 것 같아요.”
“뭐? 그게 정말이야?!”
카일라는 무척 당황한 얼굴로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어디서? 어쩌다가?!”
“저희도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카일라 씨에게 물어보러 온 건데…..”
그녀 역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했다.
때문에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일순간, 카일라가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아, 설마…..!”
“뭔가 떠올랐나요?”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나?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말이야…. 이브 너의 ‘그 능력’으로 과개조 증후군을 치료해 주었잖아.”
“네, 그랬죠.”
“그때 내 몸이 한순간에 완치됐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서… 잠깐 근처 의체 정비 시술소에 가서 검진받고 왔던 거….”
“!”
그제야 나도 떠올랐다. 그랬다. 비밀을 아는 사람은 오직 둘뿐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기적의 결과를 직접 목격한 사람이, 사실은 한 명 더 있었던 것이다.
카일라는 씹어 삼키듯 이를 갈면서 말했다.
“혹시 거기 있던 그 야매 의사놈이… 입을 싸게 놀린 걸지도 몰라. 내가 당장 가서 그 새끼 혓바닥을 뽑아버리고 올게.”
“아, 아니에요! 카일라 씨, 진정해요! 그럴 필요 없어요!”
나는 당장이라도 사무소를 뛰쳐나가서 사람 하나 족쳐버릴 기색의 그녀를 간신히 말렸다.
“벌써 이야기가 퍼졌다면, 그 의사 한 명 잡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잖아요.”
오히려 지금 무작정 들쑤신다면 소문의 들불을 더 키우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
이쪽과의 연결고리를 유추하기도 쉬워질 터였다.
그런 설명을 듣고서야 겨우 흥분을 가라앉힌 카일라의 얼굴에는 미안함과 자책감이 역력했다.
“미안해, 이브…. 내 생각이 짧았어. 당시에는 너무 놀라서 미처 염려를 못 했네.”
“아뇨, 괜찮아요. 저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걸요.”
나는 송구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카일라를 다독였다.
아무리 안일했다지만, 처음부터 거기까지 생각하고 행동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필연적인 불찰이었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실수였다. 그녀를 탓할 생각은 없었다.
내 위로에도 카일라의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한숨과 함께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떡하지?”
“혹시 그 의사한테 다른 이야기도 했어요? 어떤 식으로 치료가 진행되었는지, 제 모습이라든지……”
“아니야. 거기선 그냥 본인 신체상태에 대한 종합 검진 비슷한 걸 받은 것뿐이야. 치료 방법이나 네 이야긴 일절 꺼내지도 않았어.”
카일라는 고개를 저었지만, 이내 씁쓸한 표정을 덧붙였다.
“그치만… 불치병 때문에 골골대던 인간이 하루아침에 멀쩡해졌으니, 뭔가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고 짐작은 했겠지. 그건 검진 결과만 비교해 봐도 알 수 있으니까.”
결론은 나왔다. ‘기적’의 비밀을 유출시킨 것은 이 둘 중 누구도 아닌, 생각지도 못했던 제 삼자의 존재였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대처하느냐였다.
아직까진 거리에 떠도는 정체 모를 뜬소문에 불과하지만, 누군가 작정하고 파고들면 이야기의 근원지를 찾아낼 수도 있었다. 의사에게 찾아가 정보의 출처를 캐내고 결국 이쪽에게까지 닿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 전에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머리가 복잡했다.
그때, 조용히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에스티가 입을 열었다.
“이브 님, 일전에 제가 했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어떤 말이요?”
“자신을 제외한 타인이 아는 비밀은, 더 이상 비밀이 될 수 없다고 말씀드렸지요.”
기억났다. 그땐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에스티와 카일라, 두 사람만 입을 다물면 완벽할 거라고, 설마 그 외의 변수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역시 그녀의 말이 옳았던 걸까.
너무 안일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에스티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달리 말하자면, 세상 모두가 아는 비밀 역시도 비밀이 아니지요.”
“…. 그게 무슨 뜻인가요?”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모를 금빛 눈동자가 의미심장하게 빛났다.
“차라리 이렇게 하면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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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말한 ‘방법’이 무엇인지 채 묻기도 전에, 에스티는 내 손목을 가볍게 잡고 발걸음을 옮겼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동하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시지요.”
“네? 어딜….?”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묻는 와중에도 그녀의 발걸음은 망설임이 없었다.
카일라에게 짧게 눈인사를 건넨 에스티는 나를 데리고 해결사 사무소를 나섰다.
영문을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그녀를 따라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가 향한 곳은 이쪽의 숙소가 있던 교외 구역과 가까운 방향이었다.
그녀는 사무소가 있었던 거주구를 벗어나 조금 더 깊은 골목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등대처럼 우뚝 선 마천루들의 불빛조차 희미하게 닿는, 축축하고 어두운 골목길.
코를 찌르는 매캐한 먼지 냄새와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듯한 악취. 발치에는 정체 모를 오물들이 널려 있었다.
전날 만났던 양아치 같은 이들이 딱 좋아할 풍경이었다. 실제로 저 멀리서 삼삼오오 오가는 문신 투성이 사내들. 하지만 불안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내 곁에는 에스티가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그녀는 한 낡은 창고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겉보기론 버려진 지 오래된 듯 녹슬고 찌그러진 철문.
그녀가 다가가 가볍게 두드리자, 육중한 소리와 함께 안쪽에서 출입문이 스르륵 열렸다.
“오셨습니까, 보스!”
열어준 사람은 한눈에 봐도 험악한 인상의 사내였다.
그리고 안쪽에는 그와 비슷해 보이는, 소위 ‘떡대’라고 불릴 법한 남자들이 열댓 명 더 서 있었다.
“”오셨슴까!!!””
과시적인 크롬 의체로 팔이나 어깨를 우악스럽게 보강한 그들은, 에스티를 보자마자 일제히 깍듯이 허리를 숙였다. 줄맞춰 인사하는 모습은 이미 몇 번이고 해본 듯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에스티는 그들의 목소리에 별다른 화답없이 무심하게 손짓했다.
그제야 갱스터들은 허리를 펴고 길을 열었다. 나는 그 광경에 입을 떡 벌린 채 굳어버렸다. 조금 전 카일라의 사무소에서 느꼈던 당혹감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충격이었다.
“…..보스요? 에스티 씨?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창고 안은 희미한 전등 몇 개만이 켜져 있어 어두컴컴했지만 대충 둘러봐도 십수 명은 넘어 보이는 남자들이 있었다. 역시나 모두들 비슷한 부류, 누가 봐도 뒷골목 갱스터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이쪽을 향해 경외와 두려움이 뒤섞인 태도를 보내고 있었다.
에스티는 내 질문에 여상한 어조로 답했다.
“능동 경호의 일종입니다. 이브 님의 확실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선, 예상되는 위험 요소를 사전에 배제하고 활동 범위를 장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지역 장악…이라고요?”
“네. 이 거리를 포함한 인근 몇 개 블록의 지배권을 가진 갱단을 확보했습니다.”
아닌 밤중에 어딜 그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나 했더니, 뒤에서 이런 일을 벌이고 있었던 건가. 그녀와 만난 지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는데, 그 짧은 기간 동안 이미 뒷골목 폭력조직 하나를 완전히 장악해 버린 것이다.
그 과정이 결코 평화롭지는 않았으리라. 험악한 인상의 어깨들이 에스티 앞에서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감히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만 봐도, 그녀가 어떤 식으로 이들을 굴복시켰는지 희미하게나마 짐작이 갔다.
내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사이, 에스티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금부터 저희는 이 인원들을 이용해서… 가공의 종교 집단을 만들어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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