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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 Chapter 14

그렇게 뒤따라 들어온 누군가는, 한 쌍의 모녀였다.

“……”

닳고 닳은 옷가지.

힘없이 늘어뜨린 어깨.

그리고 그늘진 얼굴까지.

두 사람의 모습은 이 삭막한 세상의 풍파를 맞으며 살아온 이들의 전형처럼 보였다.

“저어…..”

먼저 들어선 여인의 얼굴은 오십 줄은 족히 넘어 보였다.

세월과 고생이 겹겹이 쌓인 주름이 그물처럼 퍼져 있었고, 푸석한 피부는 오랫동안 관리받지 않고 노동한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그녀의 손이었다. 마디마디가 굵고 거칠었으며, 짧게 깎은 손톱 밑에는 미처 닦아내지 못한 무언가의 얼룩이 선명했다. 그 손으로 여인은 연신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조금 불거진 듯한 눈동자가 익숙하지 않은 공간을 끊임없이 훑었다.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몸에 밴 사람 특유의 조심스러움. 평생을 낮은 곳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온 소시민의 모습이 그 짧은 순간에 응축되어 나타났다.

그녀는 문 앞에 선 채로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발을 내디뎌야 할지, 아니면 다시 문밖으로 나가야 할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그녀들을 이곳으로 데려온 사내가 툭 내뱉었다.

“뭘 그리 서 있어. 일단 앉으쇼.”

그제야 여인은 움찔하며 딸의 팔을 잡아끌었다.

마치 허락 없이는 숨 쉬는 것조차 망설이는 사람처럼, 그녀는 사내가 눈짓으로 가리킨 맞은편 의자를 향해 종종걸음을 쳤다.

찢어진 소파에 몸을 반쯤 걸치듯 앉은 여인은 딸을 자신의 옆에 단단히 붙여 앉혔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저, 저기….”

말을 시작하기까지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였는지 모른다.

“정말로…”

여인의 목소리는 겉모습보다 훨씬 더 젊은 느낌이었다. 어쩌면 고된 삶이 그녀를 실제보다 훨씬 늙어 보이게 만든 것일지도 몰랐다.

“정말로 광휘님을 믿으면…. 어떤 병이라도, 다 나을 수 있는 건가요?”

그렇게 묻는 눈빛 속엔 간절함과 두려움이 뒤섞여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사실 그녀의 행색은 남루하고 얼굴은 퀭했지만, 당장 어딘가 중병에 걸린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면 문제는 역시, 여인의 곁에 인형처럼 앉아 있는 소녀 쪽일까.

“…….”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였다.

조금 마른 편이었지만,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예쁜 미소녀.

하지만 이내 미묘한 이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시선이….’

아이의 눈은 정면의 허공, 그 어딘가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맑고 큰 눈동자였지만 마치 빛을 담지 못하는 유리구슬처럼 공허하고 흐릿하달까.

단지 그 작은 두 손으로 옆자리의 여인을 꼭 잡고 있을 뿐이다. 불안한 듯, 혹은 그것만이 유일한 안식처인 듯, 소녀는 모친의 거친 손을 놓지 않았다.

마치 세상을 가득 채운 어둠 속에서 오직 그 온기에만 의지하고 있는 듯했다.

“…….”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던 나는 무심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신이 죽은 시대였다.

상식과 이성으로 완성된 사회였다.

이런 세상에서도 사이비 종교의 감언이설 따위에 속아 넘어간 이들은….

단순하게 그들이 어리석어서일까. 답도 없을 만큼 멍청해서일까.

어쩌면, 그만큼 절박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달리 의지할 구석 하나 찾지 못해서.

현실의 벽 끝까지 내밀리고 내밀려서.

고작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지경까지 다다른 끝에, 마지막으로 눈앞에 드리워진 것이 설령 썩어빠진 동아줄이라 해도 어쩔 수 없이 붙잡은 결과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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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녕하세요? 저는… 저, 저기 13번가 근처에서… 조그맣게 미용실 해서 먹고사는 캐런이라고 합니다.”

여인은 잠시 말을 멈추고 옆에 앉은 소녀의 어깨를 가볍게 감쌌다.

“그리고 여긴 제 딸아이, 소피아예요.”

아이는 모친의 말이 끝나자 기계적으로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나 소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허공 어딘가를 헤매며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여인의 얼굴에는 순간 안타까움과 슬픔이 번졌다. 하지만 그녀는 금세 표정을 갈무리하고, 애써 다른 화제로 시선을 돌리려는 듯 가방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낸 여인은 그것을 소중하게 펼쳐 보였다.

다소 낡은 종이 위에 그려진 한 폭의 그림이었다.

푸른 하늘과 초록빛 들판, 멀리 보이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섬세하게 묘사된 수채화. 예술의 문외한이 보더라도 제법 멋들어지게 완성된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소피아가 그린 그림이에요.”

그 말을 하는 여인의 초췌한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꾸며낸 웃음이 아니었다. 딸의 재능에 대한 순수한 자부심과 기쁨이 가득 담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였다.

“참 잘 그렸지요? 얘가 어릴 때부터 그림에는 남다른 데가 있다는 소릴 곧잘 들었어요. 동네 어른들도, 학교에서도 다들 애가 보통이 아니라고들 했지요.”

여인은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자랑스러운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더 활기를 띠었다.

“오죽하면 재작년에는 교육청에서 크게 연 미술 대회에서 덜컥 대상을 받아서, 저기…. 시립 예술학교라고, 거기 특별 장학생으로 뽑히기까지 했다지 뭐예요!”

오메가 디트로이트 시립 예술학교.

이 도시에서 미술가를 꿈꾸는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 같은 곳이었다.

최고의 예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졸업만 하면 성공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고들 했다. 저 높은 빌딩 최상층 갤러리에서 어마어마한 값에 팔려나가는 그림의 상당수가 다 해당 학교 출신들 작품이라니, 말 다한 것 아니겠는가.

여인은 그 사실을 이야기하며 스스로도 모르게 어깨에 힘을 주었다. 비록 자신의 삶은 이 후미진 골목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딸만큼은 찬란한 빛 속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 그것이 그녀의 전부였다.

“솔직히…. 저는 늘 이 아이한테 빚진 마음이었어요. 이런 궁색한 뒷골목에서 키우면서, 어릴 적부터 변변찮게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했으니까요. 그런데도 속 깊은 우리 소피아는 단 한 번도 힘들다, 싫다 투정 부린 적이 없어요. 어쩜, 정말로 착한 딸 아닌가요?”

미안함과 애틋함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그녀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어디 학원에 보내준 적도 없는데, 어릴 적부터 혼자서 스케치북에 뭔가 쓱쓱 그리곤 했어요. 그러다가 이렇게…. 스스로 재능을 꽃피운 거예요. 어미로서 정말, 정말 자랑스러운 딸입니다.”

그녀는 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깊은 사랑이 담겨 있었다.

“저는 이 아이를 만나고 단 한 순간도 기쁘지 않은 적이 없었어요. 아무리 오래 일하고 녹초가 되어서 돌아와도, 소피아 얼굴만 보면 피로가 다 사라졌어요. 제 생애 가장 큰 선물이에요, 이 아이는.”

거기까지 말하던 여인의 표정이 일순 한없이 어두워졌다.

“그런데….”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녹내장이라네요.”

녹내장. 안압 상승으로 인해 시신경이 서서히, 그리고 만성적으로 손상되어 결국 시야 결손으로 이어지는 질환. 그리고 일단 한 번 손상된 시신경은, 지금 시점의 의학 기술로도 거진 재생이 불가능한 부위였다.

그 사실을 이야기하는 여인의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우리 소피아는…. 아픈데도 참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아이라서, 눈이 잘 안 보이기 시작했을 때도 저한테 바로 말을 안 했어요. 제가 걱정할까 봐…. 너무 착해서…..”

그녀의 목소리는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듯 떨려 나왔다.

굵은 눈물방울이 그녀의 거친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제가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아이한테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미리부터 학비를 모아두겠답시고,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고 밤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오지만 않았더라면…. 피곤하다는 핑계 대지 말고, 집에 돌아와서 아이 눈을 제대로 마주 보고 오늘 하루 어땠는지 물어봐 주기라도 했더라면….!”

흐느끼는 여인의 어깨 위로 소피아의 자그마한 손이 가만히 올라왔다.

아이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따뜻한 온기로 어머니의 슬픔을 위로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딸에게 오히려 위로받는 자신의 처지가 더욱 비참하게 느껴졌는지, 그녀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너무 미련했어요, 제가….. 정말 중요한 게 뭔지도 모르고, 돈만 벌면 다 되는 줄 알았어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그녀는 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그렇게 모아둔 돈을 전부 다 털면… 간신히 의안 수술을 진행할 비용은 된다고 하더라고요.”

인공 안구. 잃어버린 시력을 대신할 첨단 기술의 산물이다. 어쩌면 원래의 눈보다 훨씬 좋은 성능을 가진 기계로 대체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네, 그렇게 의안을 수술받으면 다시 앞을 볼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더 이상 화가는 될 수 없을 거예요.”

그녀는 힘겹게 설명을 이었다.

현재의 미술계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화가들의 목표는 언제나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

머나먼 과거에는, 대상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지가 미술가의 실력 척도였다. 하지만 현실의 장면을 완벽하게 박제시킬 수 있는 사진기의 발명은 모든 패러다임을 뒤바꿔버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기계 이상으로 세밀하게 표현할 방법이 없으니, 이후 예술가의 가치는 점차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을 표현하는 것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 영역마저도 인공지능이 발달하며 점차 인간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해석과 표현, 그 모든 것이 인간 화가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완성도를 지니게끔 발전해 갔다.

그 결과, 현재의 예술계는….. 마침내 기술이 아닌 ‘인간성’ 그 자체에 주목하게 되었다.

즉, 기계가 결코 모방할 수 없는 사람 고유의 불완전함.

순수한 인간만이 인지할 수 있는 감각, 감정, 내외면의 심상을 담아낸 표현만이 최고의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받는 시대가 온 것이었다.

“그래서 시립 예술학교 같은 최고의 명문에서는…. 의체를 가진 사람을 받아주지 않아요.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소용없지요. 오직 완벽하게 ‘인간’인 아이들만이 그 문턱을 넘을 수 있다는 겁니다.”

거기서부터 보이지 않는 계층의 장벽이 시작된다고 캐런은 말했다.

예술학교의 문은 재능있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정작 입학하는 것은 대다수가 상류층의 아이들 뿐이었다.

왜냐하면 하층 구역의 가정에선 오염된 환경과 저질 음식에 노출되어 건강을 해치기 일쑤였으니까. 내장이든, 팔다리든, 어디 하나쯤은 인공적인 것으로 교체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결국, 태어난 위치로부터 운명이 정해지는 셈이다.

이 거대한 도시에서 계층의 사다리를 오르는 것은 이토록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래도 부모는 꿈을 꾸잖아요. 내 자식만큼은….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 말입니다. 소중한 내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밝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은 당연하잖아요.”

캐런의 시선이 다시 딸에게로 향했다. 그 눈빛에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었다.

“우리 소피아는….. 분명 멋진 화가가 될 겁니다. 저처럼 이런 뒷골목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면서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그런 인생 말고요. 저 위 빌딩 꼭대기에 사는 번드르르한 부자들도 진심으로 감탄할 만한 작품을 그려낼 예술가요. 그렇게… 남부럽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마침내 캐런은 자리에서 일어나듯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녀의 두 손은 간절하게 모아져 있었다.

“그러니까, 광휘…. 광휘님을 믿으면…. 정말로 우리 딸아이, 두 눈 멀쩡하게 나아질 수 있나요? 그렇다면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제가….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드릴게요.”

캐런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낡은 가방에서 크레딧 카드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카드의 작은 디스플레이 화면 위로, 지난 몇 년간 그녀가 밤낮없이 일하며 한 푼 두 푼 모아온 저금 내역들이 깨알 같은 글씨로 빼곡히 떠올랐다.

매일같이 찍혀 있는 10 크레딧, 20 크레딧 짜리의 자잘한 입금 기록들.

그녀의 고된 노동과 딸을 향한 희망을 증명하는 숫자들이었다.

딸의 학비이자, 어쩌면 의안 수술비가 될 수도 있었던 노력의 결정체였다.

그 모든 것을 내민채, 어머니는 바닥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이게 제 전부입니다. 제 유일한 소원이에요. 남은 인생, 일평생 교회의 몸종으로 살라고 하시면 기꺼이 그리하겠습니다. 어떤 힘든 일이라도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여인은 거의 애원하듯 말했다.

“이 아이는….. 이 아이만큼은 구원해주십시오. 제발……”

그 간절한 기도만이 방 안의 무거운 침묵 속을 떠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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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re 8.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5 Native Language: Korean
What can a saintess do in an age where the gods are d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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