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0 – Chapter 2

지난 십수 년 동안 오메가 디트로이트 뒷골목에서 온갖 일처리를 다 해왔던 해결사.

카일라는 무언가 마뜩잖은 표정으로 이번 의뢰를 되짚었다.

“그러니까 정리해 보자면… 사용 가능한 3급 이상의 시민권과, 6개월 이상 머물 숙소를 구해달라는 말이지.”

사실 이 정도의 일처리는 크게 어렵지도 않아서, 아무 중개업자를 찾아가도 해줄 만한 수준이었다.

나름 유명 해결사 딱지를 달고 있는 그녀에게는 손쉽게 해결가능한 사안. 다만 수지타산이 맞아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상대는 아무리 봐도-

‘빈털터리? 아니, 묘하단 말이야.’

첫인상은 웬 지저분한 부랑자 꼬마가 여기까지 찾아왔나 싶었다.

의뢰의 보수를 지불할 능력이라도 있을지 의문인 행색.

하지만 시간 낭비라고 당장 내쫓지 않는 이유는, 이내 심상치 않은 감을 느껴서이다.

일단 베일을 거둬낸 외모부터가 특이했다.

허름한 거적때기 속에서 튀어나온 깜짝 놀랄 정도로 예쁘장한 미소녀.

홀로그램 광고판에 나오는 아이돌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외모는, 대체 이 뒷골목에서 어떻게 몸 성히 여기까지 찾아왔나 싶을 정도였다.

동성에 관심 없는 카일라조차도 일순 넋을 놓고 보았을 정도인데, 어지간한 남정네들이라면 아마 옷자락만 스쳐도 위험한 충동을 참기 힘들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웬 거지꼴을 하고 왔던 것도 이해는 되었다.

무엇보다도 카일라는 여태까지 키워온 눈썰미를 통해서 알아볼 수 있었다.

‘저건 성형 따위가 아니야.’

고분자 보형물로는 감히 표현해 내지 못할 자연미가 저러한 걸까.

단순한 직감만이 아니라, 입구에서부터 슬쩍 스캔해 본 결과… 의체 반응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단 하나의 임플란트조차 시술받지 않은 몸 같았지.’

하지만 카일라는 이내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건 불가능했다. 특히 이 하층 거리에서는.

노동 환경, 경제 활동, 먹는 것, 마시는 것, 심지어 호흡까지도.

쓰레기로 가득 차서, 순수한 인간의 몸으로는 결코 견딜 수가 없는 시궁창이었으니까.

‘만일 그게 가능하려면….’

태어난 순간부터 불결한 것에는 손끝 하나 닿지 않고, 평생 일할 필요조차 없어야만 했다.

그저 이름 하나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마천루 꼭대기에서 태어난 최상류층이 아니라면야….

“……..”

이쯤에서 카일라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가능성은 작겠지만 눈앞의 상대는 설마… 진짜로 가출한 대기업의 영애라도 되는 걸까?

‘외모만 보면 그럴듯한데.’

만약 짐작이 사실이라면, 혹시라도 괜한 일에 휘말리는 건 아닐지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한 횡재의 예감이 들었다.

‘어쩌면 한 번 일탈을 위해 용돈을 두둑이 챙겨 내려오셨을지도 모르지.’

생각이 거기까지 닿았을 때, 카일라는 자세를 바로잡은 채 표정을 관리했다.

“자, 그래서 일을 해결하면 보수는 얼마 정도로 생각하시는지?”

별것 아닌 심부름을 해주고 짭짤한 크레딧 달러를 받아낼 기회. 운이 좋다면 생각했던 단위에서 0이 한 자리 더 붙는 대박까지도 노릴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하던 와중에 돌아온 대답은 정말이지 예상치도 못한 것이었다.

“의뢰의 대가로, 당신의 지병을 고쳐드릴게요.”

“…….”

덕분에 그녀는 순간 벙쪄버렸다.

‘이건 또 무슨 헛소리지?’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농담처럼만 들렸다.

그야 자신이 가진 지병이라곤 오직 하나. ‘의체 과개조 증후군’ 뿐이었으니까.

전투에 사용될 정도로 출력 높은 임플란트는 사용자의 정신과 육체 양면을 중독시킨다. 과다한 금속에 연결된 몸은 면역 거부반응으로 점차 병들고, 의체 제어를 위한 중추신경 소프트웨어는 신경계를 좀먹어 이성을 잃게 만든다.

수시로 더 독한 억제제를 주사하고 소프트웨어를 조정하지 않으면 사용자는 결국 미치거나 죽음에 이른다.

인간이 기술의 힘을 얻는 대가로 치러야 했던 불치의 저주.

“그걸 네가 고쳐주겠다고?”

차라리 보수로 백 억 크레딧 달러를 내놓겠다고 말했어도 이보단 덜 터무니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조금이라도 확률이 있지만, 반대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한 번 발생한 과개조 증후군은 절대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건 일종의 물리법칙과 같았다. 지구는 태양 주변을 공전하고, 죽은 사람은 되살아날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뛰어난 기술로도, 신체에서 한 번 결손되어 무기질로 대체한 영혼의 빈자리를 멀쩡하게 되돌리는 방법 따윈 없었다.

그런 사실을 알기에 한껏 황당함을 감추지 않고 되물어봤다.

“혹시 내가 잘못 이해한 건가? 평생 맞을 면역 억제제 값을 지불한다는 뜻이야?”

“아니요. 그 몸을 더 이상 아프지 않게 치료해 드리겠다는 의미에요.”

“허, 참….”

다시 한번 태연하게 같은 답을 내놓는 소녀를 바라보며 카일라는 헛웃음을 쳤다.

만일 그게 돈이나 기술로 해결이 가능한 영역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황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아무리 연구해도 방법이 없었기에. 싸구려 의체를 박아 넣은 거리의 용병들은 물론, 대기업 소속으로 철저하게 관리받는 엘리트 요원조차도 한결같이 그 ‘은퇴’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 뒷골목에선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개조 거부반응으로 앓다가 죽는다.

카일라의 운명 역시도 그들과 다를 바 없었다. 이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단계였으니까.

“…..”

그녀는 무심코 떨리는 손을 움켜쥐었다.

의사에게 처방받는 약물의 용량이 갈수록 증가하지만, 병세는 차근차근 악화되기만 했다.

요즘은 악몽의 빈도도 늘었다.

어느 날 고장난 두뇌 피질 임플란트 탓에 미쳐버려서 사방에 총기 난사를 하다가 공권력에게 사살당하는 최후.

혹은 더 이상 이식 거부반응을 억제할 수 없어서 허무하게 피를 토하고 쓰러져 죽는 미래.

그렇게 되기까지 제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있을까. 십 년? 이십 년?

운이 좋다면 그 전에 ‘거한 한탕’을 성공하고 은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평생 맞을 약값을 벌어낸 다음, 모든 의체를 다운그레이드하면 그나마 살아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뒷골목 용병 대부분은 거기까지 가지도 못하고 총 맞아 죽는다.

그래서 흔히들 칼날 끝을 걷는 삶이라고 부른다.

그렇게밖에 살아갈 수 없는 인생이라고.

이미 어느 정도는 각오한 운명이었다.

누구처럼 사창가에서 몸이나 팔며 연명하진 않겠다고 거리에 뛰쳐나온 사춘기 소녀였을 적부터.

어떻게 사느냐와 어떻게 죽느냐는 스스로의 손으로 결정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렇게 십수 년을 악착같이 발버둥 친 결과, 남은 것은 해결사라는 명함과 의체 중독으로 엉망진창이 된 몸둥이 뿐.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았다고, 후회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더는 신경 쓰지 않는 오래된 흉터라도, 일부러 누르면 당연히 아프다.

그렇기에 울컥 짜증이 올라왔다.

“이봐…. 해도 될 말이 있고 안 될 말이 있는 거야. 그쪽이 얼마나 귀하게 자란 아가씨인지는 몰라도, 절박한 사람을 놀리는 거짓말은-”

“믿기 어렵다면 보수는 지금 선불로 지불하도록 할까요.”

“뭐?”

하지만 소녀의 태도는 여전히 당당했다. 이쯤 되자 일말의 호기심마저 생겨날 정도였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저렇게 나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어지는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역시, 말로 하는 것보단 그냥 이쪽이 빠르겠어요.”

기도하듯 눈을 감은 채, 카일라의 이마 위로 손끝을 가져다 대는 소녀.

그리고-

“…..!”

빛이 있었다.

=======================================

=======================================

나는 한참 전에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잔을 내려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계획이 ‘진짜 먹힐까?’ 싶었던 걱정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당당하게 병을 고쳐준다고 나섰지만, 그야 [성녀의 스킬] 같은 건 게임 속에서나 확인한 능력이었다.

겉모습이 그렇게 바뀌었다고 한들, 실제로도 내가 직접 사용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진 못했다.

여기까지 오기 전에 우연히 벌어진 사고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

나는 무심결에 스스로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희고 늘씬한 손가락. 잡티 하나 없이 매끈한 피부. 원래의 것과는 다르지만 광고 모델로 써도 될 법한 예쁜 손이다.

그러나 불과 몇십 분 전. 이 손은 엉망으로 피투성이가 된 적 있었다.

쓰레기통을 헤집던 와중 버려진 유리 조각에 깊게 긁혔기 때문이다. 견딜만한 통증에 비해서 파고든 상처는 허연 뼈가 보일 수준으로 깊었다. 생각보다 출혈이 많아서, 무서울 정도로 피가 흘러내려서 엄청 당황했을 정도니까. 다시 떠올려봐도 끔찍한 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흉조차 남지 않은 모습으로 멀쩡하게 되돌아왔다.

절박한 순간 저도 모르게 사용해 버린 어떠한 힘 덕분이었다.

[치유의 광휘].

게임 속 성녀의 기본 능력이었다.

효과는 단순하다. ‘대상의 상태 이상을 제거하고 회복시킨다.’

극히 간단한 툴팁이었지만, 그 한 문장만으로 나는 비현실적인 기적을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병원에 가면 수십 바늘을 꿰매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다친 손을 흉터 하나 없이 고쳐버렸다.

그렇기에 떠올랐던 계획.

사정을 알고 있는 게임 속 등장인물에게 이 능력을 대가로 거래를 제안하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캐릭터가 바로 [해결사 카일라]였다.

[네오프런트 사이버시티]에서 신의 있는 등장인물을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의리녀.

겉으로는 조금 까칠해 보이지만 그녀는 위험한 임무 도중에도 절대 배신하지 않는 용병이었다. 그렇기에 믿고 찾아온 것이다. 다행히 그녀의 사무실은 게임 속에서 보았던 정보와 똑같은 곳에 있었다.

마침,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이제야 돌아온 모양이다. 점차 가까워지던 인기척과 함께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나는 몇 시간 만에 다시 마주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녀오셨어요?”

“…….”

근처의 의체 정비 시술소에 방문하겠다고 나갔었다가 돌아온 카일라. 그녀는 어딘가 멍한 표정이었다.

“검진 결과는 어땠나요?”

“…..닥터가 경악하더라. 대체 무슨 마법을 부렸느냐고.”

그녀는 무언가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호르몬 수치랑 혈중 백혈구 농도 모두 정상 범주로 돌아왔어. 이 상태면 억제제도 필요 없다더라. 하….. 무엇보다 더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신경 보조장치를 시술받을 때부터, 머릿속에서 계속 울리던 그 망할 소음이…. 깨끗하게 사라졌어.”

그녀의 떨리는 눈동자가 이쪽을 향했다.

“대체…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야?”


I Became a Saintess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aintess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aint in a Cyberpunk Game, IBSCG, Saibeopeongkeu geim sok seongnyeoga doeeotda, Saibāpanku gēmu no naka de seijo ni natta, Wǒ chéngwéile sàibópèngkè yóuxì zhōng de shèngnǚ, サイバーパンクゲームの中で聖女になった, 我成为了赛博朋克游戏中的圣女, 사이버펑크 게임 속 성녀가 되었다
Score 8.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5 Native Language: Korean
What can a saintess do in an age where the gods are dea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