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녀의 떨리는 눈동자가 이쪽을 향했다.
“분명 약물을 주사한 것도, 소프트웨어를 조정한 것도 아니었지. 네트워크 접근 흔적조차 없었어. 그럼 뭐야. 어떻게 한 거지?”
다그치듯 물어보는 태도였지만 그럴 만 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으니까. 원작 게임에서도 과개조 증후군이 완치되는 묘사는 단 한 차례도 등장한 적 없었다. 그런 불치병이 한 순간에 나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나 같아도 선뜻 믿기지 않을 것이다.
어느새 붙잡힌 어깨가 조금 아파오기 시작했다. 어서 대답하라는 듯 힘이 점점 강해져 갔다.
“그, 그러니까….”
그럼에도 나는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왜냐하면 스스로도 마땅히 설명할 방도가 없는 힘이었기에.
게임 속 스킬? 아니면 초능력? 그 무엇을 말해도 허무맹랑하다. 애당초 [네오프런트 사이버시티] 세계관은 어떠한 신비나 이능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다. 그런 곳에서 펼쳐버린 성녀의 권능을 대체 무슨 말로 설명해야 할까. 마법 같은 건 당연히 어린이 동화책에서나 나오는 것이었다. 대답으로는 좋지 못했다.
하지만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내지도 못한 상태라서 곤란하다. 그야, 이 능력을 활용해서 필요한 것들을 구하자는 계획이 떠오르자마자 게임 속 등장인물인 해결사 카일라를 찾아왔던 것이었으니. 무언가를 생각해 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누군가는 그 행동이 너무 성급했다던가, 생각이 짧았다고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방구석에서 게임 하나 다운받다가 갑자기 다른 세상에 뚝 떨어진 것이다. 심지어 연약한 소녀의 몸뚱이로, 언제든 강도한테 총 맞아 죽을 수도 있는 범죄 도시의 뒷골목에 서 있게 되니까…. 제정신을 부여잡고 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미칠 지경이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야…’
무언가 설명을 듣고 싶은 건 오히려 이쪽이었다. 도대체 이거 무슨 악몽 같은 경우인지 모르겠다.
나는 전혀 바란 적 없었으니까. 이런 능력을 가지는 것도, 현실이 된 게임 속 세상에 떨어지는 것도. 결코 원한 적 없단 말이다.
이쯤이면 되었으니 그냥 집으로 돌려보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
서러운 생각을 하자 갑자기 눈시울이 뜨끈 달아올랐다. 순간 일렁이는 눈앞에 저도 모르게 당황해 버렸다.
이상하다. 아무리 막막한 심정이라지만 내가 이 정도에 울어버릴 성격은 아닌데. 감정이 평소보다 훨씬 들쑥날쑥하다. 기분에 따른 반응이 제어가 되지 않는 느낌이다.
하지만 눈물로는 아무런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건 지금보다 한참 어릴 적부터 진작 깨달은 사실이다. 헌데 나이 먹을 대로 먹고 나서 또 이런 꼴을 보이게 되다니. 손등으로 눈가를 문지르면서, 멋대로 내보인 추태에 우선 사과했다.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리고 고개를 들자, 예상과는 다르게 한참 누그러진 표정을 마주하게 되었다.
어느새 어깨를 붙잡고 있던 손길도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카일라가 말했다.
“미안. 겁주려던 건 아니었는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전까지 반드시 대답을 들어야겠다고 다그치던 목소리가 한순간에 온화해져서…. 뒤바뀐 태도에 내심 좀 당황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지금의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이고 있는지.
‘설마….’
여기 오기 이전에 한 번 유리창 너머로 확인해 보았던 아름답고 순진무구한 여자아이.
그런 소녀의 눈물은, 시커먼 남정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감상을 자아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자 순간 아득했다. 어깨를 두드려주는 손길에도 그저 멍했다.
“아까 전 이야기는 잊어버려. 힘들면 지금 억지로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정말 어린애 취급을 받고 있는 건가 싶어서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마주친 눈빛 너머에는 단순한 동정만이 아닌, 어떠한 사연을 헤아리는 듯한 기색이 서려있었다.
“그런 기술을 가지고, 여기까지 혼자 찾아왔을 정도면…. 그래,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겠지. 더는 묻지 않을게. 이 도시에는 많이 알면 알수록 위험해지는 이야기들도 많거든. 때로는 모르는게 약이더라.”
“…….”
저도 모르는 사연을 어림짐작 당하는 기분이란 말로 표현하기 애매했다.
사뭇 조심스러운 태도에서 짐작하기를 그녀는 이 능력의 출처를 오해하는 듯했다. 이를테면 기업에서 비밀리에 연구한 신기술이라든가. 사실상 터무니없는 착각이지만… 구태어 정정해 주지는 않았다.
달리 설명할 방도가 생각나지도 않았고, 차라리 이대로 오해에 편승해서 설명을 넘기는 편이 좋을 테니까.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이윽고 잠깐 생각에 잠겨있던 그녀가 혼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감사 인사가 늦었네. 고마워. 아직 좀 얼떨떨하지만, 정말로 내 병을 낫게 해준 거라면…. 새 삶을 선물 받은 거랑 다를 바가 없지. 반드시 보답할게.”
“그럼 의뢰는….”
“응, 일단은 보수를 받았으니까 이젠 내가 일할 차례겠지. 잠시만 기다려.”
카일라는 그렇게 말하고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얼마 뒤에 돌아와서 테이블 위에 몇 가지 물건을 올려놓았다.
“위조 신분증이랑, 방 열쇠야. 주소는 13번가…. 아니, 나중에 직접 안내해 줄게. 일단 물건부터 챙겨.”
나는 그녀의 말에 한 뼘 남짓 크기의 플라스틱 카드를 집어 들었다. 오메가 디트로이트의 시민임을 증명하는 ID 카드. 사진란에는 여전히 낯설지만, 조금씩 익숙해져가는 은백발 소녀의 얼굴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거기 새겨져 있는 이름은….
“이브니아?”
의아하게 바라보자 카일라가 설명해주었다.
“아쉽지만 위조 신분의 이름을 마음대로 정할 순 없어. 기존의 실종자 신원을 사용해서 만드는 거라, 꼭 바꾸고 싶다면 나중에 시청에서 개명 재발급을 직접 신청하는 방법도 있긴 한데…..”
그 말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걸로 괜찮아요.”
차라리 잘 된 셈이다. 지금 이 외모로, 기존의 한국식 본명은 어울리지도 않고 너무 눈에 띄니까.
이브, 이브니아…. 이제부터 나의 새로운 이름이 될 단어를 속으로 두어 번 되뇌이며, 신분증과 열쇠를 품에 갈무리했다.
그런 이쪽을 지켜보며 카일라는 다시 물었다.
“그래서 이 ‘치료’의 효과는 얼마나 가는거지? 몇 주? 몇 달?”
“더 이상 의체를 늘리지만 않으면 문제 없을 거에요. 아마도….”
완벽하게 확답해 줄 수가 없었기에 조금 가책을 느꼈다. 솔직히 나 자신부터가 정체를 제대로 모르는 힘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카일라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됐어. 설령 약빨이 오래 가지 않더라도 충분해.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머릿속이 개운하거든. 이렇게 깨끗한 세상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을 줄은 몰랐네. 줄곧 잊고 있었던 추억도 떠올랐어. 다시 한 번 고맙다고 말할게.”
그리고 꾸벅 고개 숙여서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그녀.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무언가 하나를 더 건네주었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거.”
그녀게 내 손에 올려준 건 한 자루의 권총이었다.
자그마한 크기에 비해서 은근히 묵직한 쇳덩이의 무게감.
이것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라는 걸 실감해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긴장감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일라는 가볍게 이야기했다.
“이 거리에서 살아가려면 최소한의 호신용품은 필수야. 너처럼 예쁜 아이는 특히나. 누가 수상쩍게 다가온다 싶으면 그냥 쏴버려. 스마트 불릿을 장전해 두었으니까 대충 두고 당겨도 웬만하면 맞을 거야. 알겠지?”
갑자기 튀어나온 살벌한 단어들에, 내심 움츠러든 나는 그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카일라는 처음으로 피식- 웃어 보였다.
“흠, 이쯤이면 대충 챙겨줄 건 다 챙겨준 것 같고…”
거기에서 잠깐 이야기가 끊겼다.
어느덧 사무실 안쪽까지 뻗어들어온 석양. 길게 드리우는 그림자에, 둘 다 무심코 눈길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창 밖의 도심은 어둠에 잠기며 어느새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주홍빛 하늘을 배경으로 형형색색의 광원이 켜지기 시작하는 마천루.
수천 세대가 밝힌 조명으로 거대한 등대처럼 반짝이는 메가빌딩.
그 아래에 수많은 상가들의 네온 간판으로 화려하게 불을 켜둔 골목 거리까지도.
마치 지상에 떨어진 은하수처럼 아름다워서 저도 모르게 넋 놓고 보았다. 그러자 옆에서 피식 웃는다.
“뭐야, 야경 처음 봐?”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신기하긴 했다. 같은 도심이지만 현대의 모습과는 분위기가 묘하게 달랐으니까.
구름을 뚫고 하늘 끝까지 솟아오른 초고층 빌딩들이 용적률 규제 따윈 아랑곳않고 밀도높게 빽빽히 세워진 모습은 정말로 장관이었다.
건축 기술의 발전으로 가능해진, 그야말로 마천루의 구룡성채.
상하좌우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사람 사는 불빛으로 가득 차 있어서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여기가 바로 사이버 시티…..’
나는 그날 보았던 야경을.
정말로 다른 세상에 왔음을 체감하던 그 순간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
“방 열쇠 잘 챙기고.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그럼 간다.”
카일라에게 앞으로 쓸 방을 안내받고,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후우…..”
혼자가 되자 여태 팽팽하게 당기고 있던 긴장의 끈이 탁 풀리는 느낌.
‘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아직도 내가 다른 세상에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저 생생한 꿈속에서 헤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뺨을 꼬집어봐도 그저 아프기만 할 뿐이다. 악몽에서 깨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황당한 일을 겪고 있는 나머지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지금 이곳이 진짜 현실이 맞기는 한 걸까?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미친 과학자에게 납치되어서 시뮬레이션 속에 갇힌 거라면?
배양액 속에 뇌만 남아서 거짓된 환상을 보고 있는 거라면?
하지만 거기서부터 의심하기 시작한다면 정말 답도 없었다.
지금은 그저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것들을 실재라고 믿으며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다가 문득 다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이삿짐 하나 없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방 한 칸.
내게 주어진 숙소이자, 앞으로 머물 장소였다.
‘일단 급한 불은 껐다고 봐야 하나?’
당장 거리에서 객사할 운명은 면했으니까.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목표는, 당연히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도무지 방법을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기는커녕, 이 무법천지 도시에서의 생활을 무사히 버틸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어쨌든, 당장 필요한 건…. 돈이겠네.’
여기선 정말 숨만 쉬어도 지출이 생겨나니까. 앞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창구는 필수였다.
혹시나 게임 원작의 지식을 토대로 손쉽게 돈을 구할 수 있을까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방금 전 카일라에게 확인해 본 결과, 이곳의 시간대는 무려 본편 게임의 엔딩 이후였다.
내가 아는 사건들 대부분이 이미 지나간 시간대.
어찌 보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완결 이후에 나온 확장팩을 다운받다가 여기로 넘어왔으니까….’
심지어 DLC의 내용은 일절 모른다는 것도 문제였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서 자체적으로 관련 정보를 철저하게 피해 왔으니까. 확팩 출시일 전까지는 커뮤니티에도 들어가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런 노력이 이토록 후회되는 순간이 올 줄이야.
갑자기 답답해진 심정에 괜스레 머리를 마구 쥐어뜯으면서 신음했다.
“으으…..”
그런데 손아귀에 잡히는 기다란 은빛 머리칼의 감촉이 새삼 너무 부드러워서 또 짜증이 올라왔다.
고개를 들자, 창가 너머에 내비치는 낯선 여자아이.
이 모습이 ‘신더 나이츠’ 속 성녀 캐릭터를 쏙 빼닮았다는 사실은 안다. 하지만 도무지 모르겠는 건, 대체 왜 나를 이 꼴로 바꿔 놓았을까였다.
만일 이 모든 상황이 누군가의 의도라면 그건 악마의 농간일까. 아니면 어떤 신비적인 존재의 안배인 걸까.
그럼, 정말로 신은 실존했는가. 예전 같았으면 별 고민 없이 ‘아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머리 아픈 존재론적 논증까지 꺼내 올 것 없이, 그냥 내 성격이 그랬다. 무엇이든 직관적인 이야기를 선호한다. 눈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같은건 영 성미에 맞지 않는다고 할까.
하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비현실을 이 순간 직접 체험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혹시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눈을 감고, 어쩌면 이쪽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존재에게 두 손 모아 기도를 해보았다.
제발 지금이라도 그냥 집으로 돌려보내달라고.
아니면 이유만이라도 알려달라고.
어째서 하필 나인지. 왜 이런 모습으로 여기에 떨어트려 놓았는지.
“…….”
그러나 한참 동안 기다려도 대답해 주는 목소리 따윈 없었다.
조심스럽게 눈을 떠보았지만, 나는 여전히 낯선 세상 속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텅 빈 단칸방의 정경. 한숨밖에 흘러나오지 않는 풍경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