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오늘도 수고했어~”
“네, 사장님. 먼저 가볼게요.”
퇴근 시간이 되자 나는 앞치마를 벗고 가게를 나섰다.
이젠 조금 익숙해진 귀갓길.
숙소까지 걸어가는 동안 어제 있었던 일을 잠시 회상해 보았다.
‘그 사람은 대체 뭐였을까.’
쓰레기장 속에 버려진 채 죽어가던 여자.
게임 원작의 기억을 떠올려봐도 매칭이 안 되는 인물이었다.
이왕 도와준 김에 집까지 데려갈지 생각도 해봤는데, 역시 거기까진 무리였다.
정신을 잃은 그녀의 몸무게가 장난 아니었으니까. 도대체 얼마나 밀도 높은 합금으로 의체를 꽉꽉 채워놓은 건지. 내 힘으로 옮기기는커녕, 손가락 하나 집어 올리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서 그냥 두고 왔지만… 괜찮겠지.’
차라리 잘 된 편이다. 사정도 모르는데 무작정 데려왔다가 괜히 일이 복잡해지는 것보단, 더 엮이지 않는 쪽이 좋을듯싶었다.
기왕 선행을 베푼 게 아깝지 않냐고?
그건 그냥 길을 가다가 넘어진 사람에게 손 내밀어준 정도였다.
별달리 수고가 드는 일도 아니었고, 그런 것에 일일이 보답을 바라지는 않았다.
나중에 인연이 된다면 다시 볼 수 있겠지- 정도에 불과했다.
다만 지금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고민은 다른 생각이었다.
어제 그 장소를 샅샅이 뒤져봤지만 결국 집으로 돌아갈 단서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사실. 사뭇 허탈해지는 결과였다.
원래의 세상에 돌아간다는 목표가, 애초에 이뤄질 가능성이 있기는 한 걸까.
차라리 처음부터 마법 같은 게 존재하는 세계관이었다면 모르겠다. 내가 알지 못하는 신비를 통해서 소원을 이루는 방법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여긴 사이버시티였다. 극적으로 발전된 과학 기술로 달 표면 식민지와 전뇌 세상을 만들 수는 있지만 물리 법칙을 완전히 깨부수는 요술 따윈 불가능했다. 그러니까 차원 이동이라든지. 다른 세상에 관한 이야기는 이곳에서도 상상 너머의 기술로 취급받았다. 현실적인 가능성을 서술한 이론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벌써부터 불가능이란 결과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우울해진 기분을 털어내기 위해서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냥 한숨 푹 자고, 다시 조사를 시작하면 될 거야.’
그렇게 애써 발걸음을 내딛던 순간이었다.
끼이이익-! 어디선가 울려 퍼진 타이어의 마찰음.
그리고 고개를 돌릴 틈도 없이 질주해 온 차량이 눈앞에서 담벼락으로 처박혔다.
콰아앙!!!
뒤늦게 몰아닥친 폭풍 같은 맞바람. 바로 몇 발짝 앞에서 터져 나온 충격에 나는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윽….!”
삽시간에 펼쳐진 사건에 어안이 벙벙했다.
‘뭐지? 교통사고인가?’
그때, 구겨지듯 반파된 차량의 문짝이 가까스로 열리기 시작했다.
틈새 사이를 기어 나오는 사람들. 나는 그때까지도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서 아득하게 바라보았지만 이내 멈칫했다.
나온 사람들의 면면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우락부락한 문신투성이 떡대들이다. 보이는 것만큼이나 통뼈인지, 저만한 사고에도 그냥 툭툭 털고 일어나는 모습은 어디 삐끗한 곳조차도 없는 듯했다.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던 와중에, 또 하나의 차량이 스키드마크를 남기면서 근처에 멈춰 섰다.
그곳에서 튀어나온 험상궂은 흑인 사내가, 문신이 가득한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삿대질했다.
“야 이 자식아!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야!! 눈깔 똑바로 안 떠??!”
“죄, 죄송합니다 형님!”
“물건은, 물건은 멀쩡해?!”
“넵! 여기 있습니다!!!”
부하로 보이는 스킨헤드 중 하나가 차량 뒷좌석의 틈새에서 수트케이스 비슷한 걸 꺼내 들었다.
흑인 사내는 물건을 조심히 받아 들고 으르렁거렸다.
“좋아… 이거 기스라도 났으면 너넨 전부 쏴 죽였을거야. 지금은 일단….”
그 순간 울려 퍼진 총성.
타앙-!
주변에 서 있던 남자 하나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그걸 보고 모두들 화들짝 놀라서 차량 뒤로 몸을 숨겼다.
“망할 회수팀 새끼들, 벌써 쫓아왔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등장해서 길 건너편에 멈춰 서는 검은색 SUV들. 그곳에 도색된 기업 마크는 게임에서 익숙하게 보았던 표식이다.
에이시큐어 코퍼레이션.
오메가 디트로이트에서 민간 보안업에 종사하는 중견 기업. 일종의 사설 경비업체였다.
서비스의 질은 높지 않아도, 비용이 저렴하고 시장 점유율이 높아서 도시 내부의 이런저런 사건에 자주 등장한다. 그런 이들이 딱 봐도 갱단 조직원들을 쫓아왔으니, 이제부터 벌어질 일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었다.
짐작대로 연회색 전투복을 입은 병사들은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총을 쏘기 시작했다.
타타타타-! 콰앙!!
이에 발끈한 갱들 역시 곧바로 응사했다.
“젠장, 일단 여기서 꼬리 자르고 간다!! 갈겨버려!”
“예 형님!!”
그렇게 총격전이 시작되었다. 거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바뀌었다.
핏물과 고성, 메케한 화약 냄새와 탄피가 난무하는 그 한복판에서.
나는 그때까지도 얼떨떨하게 주저앉아 있었다.
“……..”
거리를 가득 채운 총성의 연발.
사방으로 튀어 나가는 도비탄이, 쐐엑- 하는 소름끼치는 파열음과 함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머리로는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려서, 아무리 애를 써도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게임이랑 너무 다르잖아…..’
모든 것이.
정말로 모든 것이 차원이 다르다.
코앞에서 직접 터지는 총소리는 하나하나가 천둥처럼 등골을 타고 울렸다.
씁쓰름한 화약 냄새와 뒤섞인 피비린내는 조금만 들이마셔도 속이 울렁거렸다.
쾅!!! 푸확-! 방금 어떤 사람 머리가 총에 맞아서 풍선처럼 터져나가는 걸 봤다.
선분홍빛 뇌수 조각들이 쓰레기처럼 바닥에 흩뿌려지는 꼴을 생생히 지켜보았다.
그래서 움직일 수 없었다.
단 한 발짝이라도 잘못 디뎠다간 나도 저렇게 될 것 같아서.
난생처음 느껴보는 생명의 위기에 식은땀만 흘리며 바짝 굳어버렸다.
‘왜 하필 지금, 여기서 이러는 거야…..’
매일같이 걸어왔던 귀갓길인데 하루아침에 지옥이 되어버렸다.
사실 짐작 가는 부분이 아예 없진 않았다. 이런 급작스런 소요 사태는 원작 게임에서도 종종 등장했으니까.
조직 항쟁, 인질극, 총기 난사, 차량 추격과 같이 오픈필드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각양각색의 사건들은 플레이어의 재미를 위해 구현해둔 랜덤 인카운트의 일종이었다.
다만 보통은 뉴스 속보를 듣고 한참 운전해서 찾아가야만 현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게임의 맵 자체가 실제 대도시를 통째로 구현해 둔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규모였으니까. 무작위로 발생하는 이벤트 좌표에 때마침 유저가 자리하고 있을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서울 하늘에서 떨어트린 소포를 그냥 길거리 어딘가에 서서 받아낼 가능성과 비슷하다.
우연하게 말려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단 말이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진 참사는 진짜였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지? 그 정도의 낮은 가능성조차도 무시하지 말았어야 했나?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했다. 이딴 건 사람의 계산으로 어떻게 대처할 방도가 없는 천재지변이다.
휘말린 순간, 그저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탕-! 타타타탕!!!
그렇게 영겁 같은 시간이 지나자 총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포연이 걷힌 뒤 살아남은 쪽은 기업의 추격자들이었다.
저항하던 갱단원들은 몇몇만이 생포되었고 나머진 전부 벌집이 되어서 죽어버렸다.
어설프게 도망치던 이들조차 드론이 따라붙어서 확실하게 마무리했다.
“……..”
상황이 끝난 다음 무장한 병사들은 이곳저곳 갱들의 시신을 뒤적이며 수습했다.
그중 하나가 근처에서 통신 단말을 매만지며 어딘가로 연락했다.
“보고합니다. 당소 알파팀, 현장 제압 완료했습니다.”
[“화물은 회수했나?”]
“네, 그렇습니다.”
[“좋아, ODPD 짭새들 오기 전에 주변 깔끔하게 정리하고 복귀해.”]
“확인했습니다.”
타앙-! 갑자기 다시 터져 나온 총성에 나는 무심코 어깨를 떨었다.
제압했던 갱단원을 확인 사살하기 시작한 병사들. 그중 하나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눈이 마주치자 멈칫, 병사는 총구를 내리고 통신 단말기에 손을 가져다 댄다.
“전무님, 추가 보고드립니다.”
[“뭐야.”]
“현장에 민간인 한 명이 남아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
짧은 침묵. 이어지는 답신은 간결했다.
[“목격자는 남기지 마.”]
“…..!”
나는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병사도 마찬가지였는지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네? 그래도… 성인도 안 된 여자아이입니다.”
[“지시 못 들었나?”]
고압적인 명령에 병사는 더 이상 반문하지 않았다.
“…. 확인했습니다.”
교신은 그렇게 끝났다.
다시금 올라가는 총구.
조준선 끝이 가리키는 방향은… 이쪽이다.
새카만 구멍이 눈앞으로 다가온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잠시, 잠시만…..’
무언가 항변하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목이 잠겨서 쇳소리만 흘러나왔다.
그냥 믿고 싶지 않았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그냥 휘말린 것뿐인데. 어째서….
‘말도 안 돼. 이럴 리가… 뭔가, 뭔가 잘못된 거잖아.’
억울하다 소리치고 싶었지만, 답답하게 꽉 부어오른 목구멍에서는 여전히 숨 하나 삐져나오지 못했다.
총을 겨눈 병사는 건조한 목소리로 내뱉을 뿐이었다.
“운이 나빴군. 유감이다.”
그 한마디에 속이 뒤틀릴 지경이었다.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고 쏘아붙이고 싶었다.
이 세계가 어떤 사회인지는 안다. 무력한 개인 따위는 철저하게 짓밟히는 도시. 모두가 인간성을 잃어버린 초자본주의 사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은 사람이다. 법도 재판도 없이, 방해되니까 그냥 치워버리는 쓰레기 따위가 아니란 말이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죽음의 공포 사이에서 조금씩 분한 마음이 피어났다.
억울했으니까. 스스로 남들보다 선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벌을 받을 만큼 나쁜 짓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약자라도 이딴 처사를 당할 이유 따윈 없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울면서 빌고 싶진 않았다. 다른 세상에 와서까지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것만큼은 싫었다.
무심코 이가 악물렸다. 고개를 들어서 상대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여전히 무정하다. 웃지도 찡그리지도 않는 표정은 누군가를 죽이기 직전의 살인자라기보단, 정해진 일을 무심히 수행하는 근로자에 가까웠다. 상대는 소속된 회사의 명령 아래 지금과 비슷한 짓을 몇 번이고 저질렀겠지. 그렇게 무뎌지고 무뎌져서 지금은 손에 피를 묻히는 일에도 아무런 죄책감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옳은 일인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기계처럼.
그 비인간적인 태도 앞에서는 설령 어떤 설득이나 애원도 소용없을 거란 사실만 직감했다.
“…….”
매 순간 입술이 사포처럼 바짝 말라갔다. 마주친 시선 너머에서 찰나가 주마등처럼 길게 늘어졌다.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
지금 내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물건의 존재였다.
‘…..맞아. 그게 있었지.’
카일라가 건네준 호신용 권총. 여태까지 한 번도 잊지 않고 챙겨 다니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망설임은 잠깐.
각오는 빠르게 섰다.
그래, 내가 뭘 어찌해도 저쪽에선 살려줄 생각이 없다면,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 멈춰!!”
하지만 역시 현실은 영화가 아니었을까.
주머니에 손을 뻗는 것보단, 역시 방아쇠를 당기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반론할 수 없는 사형선고였다.
타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