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앙-!
코앞에서 터져 나오는 총소리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봐도 각오했던 아픔이나, 주마등은 없었다.
오직 매캐한 화약 냄새만 코끝에 맴돌 뿐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다시 눈을 떠보자 어렴풋한 시야에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
그, 혹은 그녀의 손에 붙잡혀서 하늘로 높게 들린 총구.
뒤늦게 떨어지는 탄피가 팅, 티잉- 하며 두어 번 바닥에 튕기고 또르르 굴러갔다.
“당신 누구야?!”
난데없이 할 일을 방해받은 병사는 무척 당황한 기색이었다.
끙끙거리면서 그 손아귀에서 소총을 빼내려고 하는데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깐 이어진 대치 속에서, 갑자기 등장한 정체 모를 인물은 잠깐 이쪽을 뒤돌아보았다.
눌러쓴 모자와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
그 사이로 유일하게 드러난 황금빛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왠지 저 눈빛을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들어서 기억을 떠올리려던 찰나였다.
“후읍!”
갑자기 병사가 붙잡힌 소총을 미련없이 놓아버렸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뽑아 든 단검. 등 뒤를 망설임 없이 찔러오는 공격에, 깜짝 놀란 나는 경고하려고 했다.
“위, 위험-”
하지만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이미 주먹이 때려 박히고 있었다.
뻐억! 병사에 안면에 그대로 적중하는 펀치. 으드득-, 무언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뒤따랐다.
그리고 얻어맞은 몸뚱이는 마치 트럭에 치인 것처럼 몇 미터나 튕겨 나갔다.
길 건너까지 날아가서 부딪친 담벼락이 와르르 무너질 정도였다.
“……..”
어마어마한 힘이다.
눈앞에 보이는 실루엣 자체는 그냥 평범한 여성의 체격인데. 저 가녀린 몸선 어디에서 저만한 완력이 나온 걸까.
성인 남성을 주먹질 한 방에 날려버리고 고작 가볍게 손목만 터는 모습에 경악했다.
하지만 감탄도 잠시, 그 소란은 주변의 이목을 끌어모았다.
“습격이다!”
근처에 있던 병사들이 이변을 눈치채고 소리쳤다.
분주하게 이쪽으로 겨눠지는 총구들.
하지만 그녀가 한발 빨랐다.
이미 다른 상대의 코앞에서 주먹을 날리고 있었으니까.
퍼억-!
“우욱!”
깔끔한 복부 가격. 힘 풀린 병사의 손에서 자연스럽게 소총을 뺏어 들었다.
그리고 능숙하게 빙글 돌려잡은 다음 견착과 즉시 격발했다.
타앙-!
분명 세 번 쏘았다. 그런데 총성이 하나처럼 겹쳐 들릴만큼 빠르다.
“꺼흑!”
명중률 또한 뒤떨어지지 않았다. 한 호흡으로 이어서 연사하는 모든 탄이 정확하게 미간을 꿰뚫고 있었으니까.
탕, 탕, 타탕, 탕!
압도적으로 신속하고 정밀한 사격술. 그것만으로도 현장의 병력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잠깐이라도 고개를 내민 순간 한 발 빠른 총성에 여지없이 미간을 꿰뚫렸기 때문이다.
“끄어억…!”
나는 그 모든 광경을 아득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맨눈으로는 따라가기도 벅찬 움직임이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느꼈다.
‘저건, 전문가야.’
단순히 완력이나 임플란트 출력만 강한 것이 아니다. 모든 움직임이 간결하고 정교하다. 순발력과 전투 센스는 탁월 그 자체. 문외한이라도 그녀의 존재는 이 전장에서 급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적들 역시도 그걸 깨닫고 있었다. 어설프게 응사하려던 동료 몇 명이 더 쓰러지자 이제 대응조차 포기하며 엄폐물 너머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다급한 목소리만 저 너머에서 울려퍼질 뿐이다.
“젠장…. 갑자기 어디서 저딴 괴물이…!”
“뭐 하고 있어! 지원 불러!!”
덕분에 아주 잠깐의 소강상태가 생겨났다.
일순 총성이 멎은 고요.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가, 근처의 시체에서 새로운 탄창을 꺼내들던 와중이었다.
쿠웅-, 사람의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육중한 발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왔구나! 빨리 저 년 죽여버려!!”
새로 나타난 상대는 신장이 족히 3m는 될듯한 거인이었다.
타앙-! 시선이 마주치자 즉시 터져나온 총성.
하지만 거인의 이마에 정확히 적중했음에도, 마치 철판을 때린 듯한 소음과 함께 튕겨나갔다.
찢겨나간 피부 아래 크롬빛의 장갑판이 언뜻 보였다.
그 모습에 나는 무심코 헛숨을 삼켰다.
‘저건…. 저거너트잖아…!’
전신의 피하를 특수 방탄 장갑과 의체로 완전히 도배한 강화 인간.
여태껏 쓰러트린 병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개조를 거친 사이보그, 말 그대로 진짜 괴물이었다.
‘어떻게?! 이런 하층 거리에서 등장할 놈이 아닌데….!’
하지만 무어라 경고하기도 전에 놈은 이미 그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우오오오!!!!”
탕- 타앙! 사격은 연달아 적중했지만 데미지가 들어가는 낌새는 없었다.
보이는 대로 저거너트는 물리적인 공격에 대해서 거진 무적에 가까운 존재였다. 어지간한 중화기도 튕겨내는 피하 장갑의 내구도 덕분이었다.
공략법이 있다면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의체 소프트웨어를 원격 해킹하는 정도일까.
하지만 눈앞의 거인은 혹여나 그럴 틈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 그녀에게 바짝 붙어서 연달아 펀치를 날렸다.
“후욱-!”
콰아앙!!!!!!
주먹 한 방에 아스팔트 바닥이 쿠키처럼 쪼개졌다.
그녀는 공격을 가까스로 피하고, 소총을 야구 배트처럼 휘둘러서 저거너트의 머리를 정확히 후려찍었지만 박살나는 건 오히려 소총 쪽이었다.
콰직-! 충격을 견디지 못한 개머리판이 두 동강으로 분질러지는 순간, 그녀가 마침내 거인의 손에 붙잡혔다.
솥뚜껑 같은 손아귀가 우악스럽게 그녀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후우웃….!”
위험하다. 저거노트의 강점은 방어력뿐만이 아니니까. 그 합금 의체의 막대한 중량을 감당하고 움직이기 위해서 뿜어내는 근력. 어지간한 대형 트럭의 엔진을 능가하는 힘으로 지금 그녀를 짓뭉개고 있는 것이다.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울긋불긋 핏줄이 돋아나도록 힘주던 거인의 얼굴이, 십자로 깔끔히 쪼개지기 전까진.
푸확-!
어느새 그녀의 양 팔에서 수직으로 뻗어나온 칼날. 강철보다 단단할 장갑을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베어버렸다.
목을 잃은 몸뚱이가 휘청하다가, 육중한 소리와 함께 쿵 쓰러졌다.
그 모습에서 나는 다시 한 번 경악했다.
저거너트의 방어력은 머리라고 약한 부분이 아니었을 텐데, 저만큼 말끔하게 토막내다니.
광택 하나 없는 검은색 칼날은 얼마나 예리한지 피 한 방울 묻어나지 않았다.
그 특유의 색감에 문득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저거 설마, 나노 블레이드인가?’
근접전용 임플란트 소재 중에서 최상위로 꼽히는 합금.
같은 무게의 금값의 80배에 달하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최첨단 연구실에서 극소량으로 제작되는 희귀성 탓에 매물이 풀리지도 않는다. 암시장 따위에서는 소문조차 찾기 힘들었다.
그러니 이 도시에서 저만한 물건을 가지고 있을 부류는 극소수뿐이다.
아주 위험한 임무만을 전문으로 수행하는 최정예 용병, 혹은 요원.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아난 팔뚝을 쓸어내렸다.
“…….”
복잡해진 머릿속 생각과는 다르게 주변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저거너트조차 쓰러진 마당에, 몇 안 남은 병사들은 의지를 완전히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둘씩 바닥에 떨어지는 무기들. 상황을 지켜보던 그녀는 양 팔의 블레이드를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바닥에 굴러다니던 권총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
“자, 잠깐. 투항하겠다.”
병사들은 뒤늦게 항복의 의사를 말해왔지만 그녀는 아무 대꾸도 없이 무심하게 방아쇠를 당겼을 뿐이다.
탕, 탕, 타앙, 그렇게 몇 차례 총성이 울린 후 나머지 잔당들까지 전부 쓰러졌다.
이제 현장에 남은 것은 오직 시체뿐이다.
갱단의 조직원, 보안 회사의 기동대. 그 누구 하나 살아남지 못했다.
아무리 하층 거리의 전투라지만, 이토록 처참한 광경을 단 한 사람이 만들어냈다고 말하면 믿을까?
어쩐지 경외감마저 느껴지는 전흔.
때마침 이 모든 것을 자아낸 주인공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
저벅-, 저벅-.
피칠갑한 몰골로 한 발짝씩 다가오자. 저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이윽고 서로 손 닿을 거리에서 멈춰 선 발걸음. 무심코 눈을 찔끔 감았다.
“찾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들리는 목소리엔 어떠한 적의도 없어서. 난 그제야 상대방을 제대로 마주 볼 수 있었다.
푹 눌러쓴 모자와 마스크 사이에서 유일하게 드러난 황금색 눈동자가 역시나 익숙하다.
‘분명 어디선가 본 적 있어.’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그러자 정답은 금방 나왔다. 애당초 이 도시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 자체가 몇 명 없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 특유의 반짝이는 금안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어제 쓰레기장에서, 설마-‘
하지만 그 짐작에 확신이 없어서 머뭇거리는 사이,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은인.”
“아….”
내 예상이 맞았구나. 역시 그때 뒷골목에 쓰러져 있었던 그 사람이었어.
진실을 깨닫자 긴장이 탁 풀린 나머지 제자리에 흘러내리듯 주저앉았다.
“괜찮으십니까?”
그녀의 물음에 쉬어버린 목소리를 억지로 짜내서 대답했다.
“네… 덕분에요….”
아직도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우연한 불운으로 죽음의 문턱 끝까지 내몰렸다가, 사소하게 베풀었던 선행이 그대로 되돌아와서 목숨을 건져주다니. 인생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정말로, 영문을 모르겠단 말이다.
“하아….”
그렇게 온 몸의 진이 다 빠져나간 한숨을 내뱉던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말벌이 날아드는 듯한 소음이 들려왔다.
부우우웅-
타앙! 그녀는 내가 무언가 알아보기도 전에 그걸 격추시키고 이야기했다.
“스케빈저 드론입니다. 이만한 난리가 있었으니 벌써 냄새를 맡은 듯 합니다.”
하층 거리의 시체 청소부들. 사건사고가 지나간 현장에서 돈 될 만한 부품을 뜯어먹기 위해 모여드는 것들이다.
혹여나 스케빈저라는 이름에 우습게 보아서는 곤란하다. 놈들은, 임플란트를 빼먹을 때 이전 소유주의 목숨이 아직 붙어있어도 아랑곳 않을만큼 악랄한 족속이었으니까. 전투력은 차치하고서라도 상대하는 것만으로 사람 피곤하게 만든다. 되도록 얼굴을 마주치지 않는 편이 좋았다.
“소란스러워지기 전에 일단 자리를 옮기시죠.”
그녀의 말에 이쪽도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어찌되었든 이 장소에서는 이제 한시조차 더 머물고 싶지 않았으니까.
손짓하는 그녀를 따라서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이었다.
“앗….!”
하체에 힘이 풀려서 다시 주저앉았다.
과도한 긴장으로 마비된 두 다리는 여전히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바들바들 떨리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 난감해하던 와중 갑자기 허벅지와 어깨를 감싸는 손길이 느껴졌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네? 엣?!”
그리고 불쑥 들어 올려지는 몸에 당황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그녀에게 안겨 있었다.
그것도 세간에서 말하길… 공주님 안기라고 부르는 자세 그대로.
“…..!”
스스로의 꼴을 자각하는 순간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무슨 꼬마애도 아니고,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아저씨가 처음 보는 여자한테 이런 자세로 매달리게 되다니. 일평생 처음 겪어보는 수치였다.
“저, 저기….”
“어디 불편하신 부분이 있으십니까?”
때문에 당장 내려달라고 항변하려던 찰나 문득 깨달았다.
지금 자신의 외양이 남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지는지.
요즘 매일 아침마다 거울 너머로 마주하는 낯선 소녀의 얼굴.
스스로도 적응되지 않아서 흠칫흠칫 놀라고 했던 그 여자아이의 가련한 외양이라면, 이렇게 들어올려지는 것도 딱히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겉모습이 그렇게 변했다 한들 내 정체성은 여전히 멀쩡한 성인 남성에 가깝단 말이다.
그래서 의식할 수밖에 없다. 안겨진 자세에서 살결이 맞닿고 있는 이런저런 부분들을….
‘으으…..’
의외로 그녀의 피부는 무척이나 부드럽고 따스했다.
그 안쪽에 살인적인 의체가 내장되어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온 몸에서 느껴지는 푹신함에 나는 무심코 달아오르는 얼굴을 애써 감추었다.
“……”
어쩐지 양심에 찔리는 기분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직접 무어라 사정을 설명하기에도 난감하고…. 또 그 후폭풍이 무척이나 두려워서.
그녀의 손으로 만들어진 수십 구의 시체 사이를, 이쪽은 그저 입 다물고 얌전히 안겨서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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