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현장에서 충분히 멀어지고 나서야 나를 품에서 내려주었다.
“후우….”
이제야 두 다리에 감각이 돌아왔다. 드디어 제 발로 대지를 딛고 일어선 나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마스크와 모자를 벗은 그녀. 드러난 맨얼굴은 예상보다 훨씬 세련된 미인이었다. 차분하고 이지적인 이목구비. 나이는 아마 스물 중후반쯤 되어 보였다.
브레이디드 번이라고 했던가? 전투 중에도 흐트러지지 않도록 단단히 땋아 올린 검은 머리칼와 금색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어제 쓰레기장에서 보았을 땐 상처와 붓기 때문에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미모였다.
무심코 넋놓고 바라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감사 인사부터 해야지.
“우선, 도와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어요. 그러니까 이름이…”
“ST-780199입니다.”
“ST…. 네?”
돌아온 대답에 순간 벙쪘다.
아무리 여기가 사이버시티라지만 저딴, 아니, 저런 명칭이 사람 이름일 수가… 있나?
“그, 그럼 일단은…… 에스티 씨라고 부를게요.”
“그쪽이 편하시다면 상관없습니다.”
그러고 잠시 대화가 멎었다. 이쪽은 다음에 꺼낼 말을 신중하게 고르느라, 상대는… 모르겠다.
저 샛노란 눈동자를 처음 봤을 당시부터 그 너머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당최 짐작할 수가 없었다.
한밤중의 달처럼 빛나는 금안. 사람이라기보단 위험한 맹수의 그것에 가깝게 느껴진다. 어쩌면 당연한 감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방금 전까지 말 그대로 수십 명을 눈 하나 깜짝 않고 도륙 내버리고 온 와중이니까. 그것도 뒷골목 양아치 따위가 아니라 훈련받은 보안 기업의 병사들을.
그게 과연 단순히 은혜를 갚는다고, 고작 그런 이유만으로 선뜻 해낼 만한 일인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생각해 보면 의문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나를 찾아온 시점부터가 너무 빨랐다.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어제 봤던 그녀의 상태는 완전 만신창이였다. 그 정도 부상이라면 몇 주 내내 요양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거기다가 당시에 사용했던 [치유] 스킬은 완벽하게 시전되지도 않았었다. 이상하게도 일전 카일라에게 사용했을 때보다 힘이 몇 곱절은 들어서, 부상을 완치시켜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가까스로 숨만 붙여둔 수준이었는데….
‘잠깐만, 설마… 그런 상태로 방금 기동대 하나를 쓸어버린 거야?’
가라앉았던 긴장감이 다시 스멀거리며 피어오르는 와중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귀하께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역시나. 이어질 이야기가 아마도 나를 찾아온 진짜 목적이겠지. 해서 사뭇 긴장하던 와중이었다.
“혹시 제가 누군지 아십니까?”
“네?”
뜬금없는 소리에 잠시 벙쪘다. 마치 자의식 과잉인 유명인이나 할 법한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의중을 몰라 머뭇거리자 그녀의 설명이 이어졌다.
“사실… 현재 저는 기억을 대부분 소실한 상태입니다.”
“네? 어쩌다가….”
“일종의 보안 조치입니다. 내부 기밀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 제 의체 기판 심부에는 킬 스위치가 식립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작동하면서 두뇌피질 임플란트 메모리와 신경계 일부가 손상되었습니다. 때문에 지금 전 본래의 소속도, 진짜 이름도 떠올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당신을 만나서 목숨을 건졌다며, 그녀는 담담히 자신의 사정을 밝혔다.
“상황을 추론컨대, 어떠한 문제로 인해 ‘상급자’에게 처분당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원인이나 과정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저 버려졌다는 사실만 짐작할 뿐이지요. 그렇기에 실례일지 모르지만 귀하를 곧바로 찾아온 것입니다. 혹시 당신께서 제 과거에 대해 무언가 알고 계실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연이었다. 그런 처지라면 깨어나자마자 나를 찾아온 행동도 이해가 갔다.
허나 안타깝게도 내게는 그녀가 기대할 만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모, 모르겠네요. 저는 단지 지나가다 우연히 쓰러져 있던 에스티 씨를 발견했던 게 전부라서…”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 어떻게 제 생명을 구해주신 겁니까?”
“무슨 뜻이에요….?”
잠깐의 정적. 마주 보는 금빛 눈동자가 유독 서늘하게 빛났다.
“보안 조치, 자가사멸 프로토콜은 대상의 완벽한 삭제를 보장합니다. 한 번 발동되면 아무리 뛰어난 해커라도 해당 시스템을 도중에 멈출 수 없습니다. 임원급 이상의 상위 권한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당신을 해당 처분의 관련자라고 추측했다며, 그녀는 섬뜩한 소리를 해댔다.
당황한 나는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아뇨, 아니에요. 그런 거랑은 전혀 관계없어요. 믿어주세요….!”
그녀를 배신하고 버려둔 이들과 한패로 생각되다니. 위험한 오해였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방법으로 프로토콜의 시퀸스를 멈추고 저를 구해 주신 겁니까?”
“그게…..”
빤히 내다보는 눈길에, 당장 답변해야 할 듯한 압박감을 느끼면서도 말문이 탁 막혔다.
왜냐하면 그 진실이 정말 터무니없었으니까. 만약 그녀에게 ‘게임 속 성녀의 스킬로 딸깍해서 해결했어요.’ 라고 답한다면, ‘아, 그렇군요.’ 하고 넘어갈까, 아니면 제대로 된 답을 강제로라도 듣기 위한 ‘심층 면담’이 시작될까.
그건 필히 두려운 시간이 될 것이다. 그녀는 분명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 능숙한 부류였으니까.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 타인을 심문하는 일에도 주저가 없겠지.
하지만 그럴듯한 이야기로 둘러댈 수도 없었다.
당장 생각나는 변명도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왠지 지금 거짓말을 하는 건 정말 위험한 선택일 거라는 강한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게… 그러니까…..”
나를 차분히 응시하는 눈동자가 재촉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그 이상의 위기감을 느꼈다. 그녀가 나를 적으로 판단하기 전에 뭐라도 대답해야만 했다. 다급함으로 머릿속이 가득 뒤엉켰다.
검붉은 피딱지가 말라붙은 손끝이 살짝 움찔하자, 그 압박감은 곱절이 되었다.
순간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뱉어버렸을 정도로.
“시… 신의 기적으로?”
뇌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온 제 목소리에 즉시 직감했다.
‘망했다.’
실수였다. 알다시피 ‘네오프런트 사이버시티’는 어떤 신비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관이다. 그저 눈부시게 발전한 기술 아래 모든 불가지의 장막이 걷힌 합리의 시대. 과학 문명을 토대로 세워진 초물질주의 사회에서는, 사용하거나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쓰레기보다 무가치하게 여겨진다.
때문에 기존의 종교들 역시 자연스럽게 사멸해버린지 오래인 세상이었다. 실험으로 재현할 수 없는 미신이나 이적 따위는 아무도 믿지 않게 되었기에. 두 번의 천년기를 지배했던 신앙조차 구세대의 낡은 문화로 애저녁에 멸종해버린 상태였다.
그런 도시에서 신의 기적을 대답이랍시고 꺼내다니. 엄청난 실수였다.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 두려울 지경이다.
“신….?”
아무리 그녀라도 조금은 당황한 듯했다. 줄곧 무표정하던 얼굴에 처음으로 감정이 스쳤다. 일순 눈이 동그랗게 떠졌지만, 그 모습은 찰나였고 다시금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는 곧장 되물었다.
“어떤 신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혹시 기독교나 불교에서 묘사되는 그런 존재인가요?”
“그게, 그러니까….”
당장 힐난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저렇게 다시 묻는 의도는 대체 뭘까.
‘이걸 진짜 믿어준다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응에 이쪽이 더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어쩔 수 없다. 나는 서둘러 기억을 되짚었다. [신더 나이츠]의 설정이 어떻게 되었더라? 거기서 성녀가 신앙하던 교단의 신은, [바깥의 시선]들 중 하나인….
“긍휼한 광휘.”
분명 그런 이름이었다.
“……그렇군요. 그게 신의 기적이었다니.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듣기에 정말 허무맹랑한 소리였는데, 그녀는 여전히 이상할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주고 있었다.
나는 의아함을 참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저, 정말로 제 말을 믿어주시는 건가요…?”
그녀는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귀하의 생체 반응을 종합해서 스캐닝한 결과, 98%의 확률로 거짓을 말하지 않으셨다고 판단됩니다. 맥박, 호흡, 동공의 크기 조절, 땀샘, 체온 변화, 내분비계 활성, 교감신경계 작용 등을 분석했을 때 최소한 본인께서는 진실로 생각하시는 반응입니다.”
그 말에 퍼뜩 깨달았다. 이쪽을 빤히 바라보며 시종일관 반짝이던 금빛 눈동자가, 단순히 예쁜 것만이 아니라 상당히 고성능인 의안이었다는 사실을. 만약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지어냈다면 오히려 더 난처해졌을지도 모른다는 것마저도 깨닫고. 뒤늦게 식겁했다.
‘다, 다행이다. 일단 거짓말까진 아니었으니까….’
사실 ‘신의 기적’이라는 것도 완전히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성녀]에게 주어진 능력은 어찌 되었든 결국 그쪽에서 비롯된 힘일 테니까. 아마도. 솔직히 막연한 추측에 가까웠다. 이따금 혹시나 싶어 하늘에 대고 기도해봐도, 여전히 누군가의 계시가 들리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달리 짐작 가는 부분도 없어 일단은 무의식 중에 스스로도 그렇게 여기고 있었나보다.
잠깐 딴생각에 빠져있던 사이 그녀가 다시 말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혹시 그 기적을 다시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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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피부를 타고 선혈이 뚝뚝 흘러내리는 팔뚝.
그 위로 자그마한 손가락 하나가 와닿자 순간 환한 빛무리가 퍼져나왔다.
파아앗-!
눈부신 광채가 거둬졌을 때, 피흘리던 상처 역시 흔적도 없게 사라져 있었다.
“……..”
차분하게 가라앉은 금빛 눈동자가 그 모든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는 와중이었다.
다기능 스캐너가 달린 의안의 동공은 마치 망원렌즈의 조리개처럼 섬세하게 조절되며 눈앞의 장면을 관측해냈다. 그렇게 측정된 데이터는 의체 내부의 연산장치에서 분석되었고 머지않아 결과가 나왔다.
“과연, 그렇군요. 현재 상용되는 어떠한 의료 기술과도 궤를 달리하는 현상입니다.”
눈앞에서 직접 시현해본 ‘기적’을 목격하고, 마침내 완벽하게 오해가 풀린 그녀는 이쪽으로 깊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쓸데없는 억측으로 은인께 크나큰 무례를 범했습니다.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허리까지 접어서 정중히 사과하는 태도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아, 아니에요. 에스티 씨가 없었더라면 저도 큰일 날 뻔 했는걸요.”
잠깐의 곡해가 있었다지만 크게 유감은 생기지 않았다. 피차 목숨을 구해준 것은 사실이니까. 무사히 해결된 것만으로 만족했다.
역시 백 번 말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직접 한 번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었을까. 사실 나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능력이니까. 처음부터 이렇게 했으면 훨씬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일렀을지도 모르겠다.
“주제넘은 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주의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네? 무엇을요?”
“당신께서 보여주신 [기적] 말입니다. 무척이나 위험한 힘으로 사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