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서 결론은, 역시 ‘돈이 필요하다’ 였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모으는 것에도, 하루하루 살아갈 의식주를 충족하는 것에도, 어쨌건 모두 비용이 든다.
특히 이 도시에서는 숨만 쉬어도 돈이 빠져나간다. 초자본주의의 현실화 같은 세상이니까.
‘어쨌든 안정적인 수입이 나올 구석이 필요하다는 건데.’
그런 의미에서 잠깐 생각해 보자. 사이버시티 세계관에서 돈벌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를까?
금지품 밀매, 마약 거래, 은행강도 같은 총질과 폭력이 난무하는 사건들이 아무래도 연상되는 것이다.
그야 게임이니까. 화끈하고 자극적인 일이 아니면 할 의미가 없지 않은가?
애당초 그런 하드보일드한 매력에 빠져서 시작한 게임이기도 하고. 원작에서 보았던 직업도 해결사나 용병 같은 직종이 대다수였다.
‘좋아, 결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여기서 처음으로 선택한 일자리는 바로-
“어서 오세요! 포장이신가요?”
피자집 종업원 아르바이트였다.
뭘 기대하나. 이 세상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 된 이상, 당연히 위험한 행동은 피하는 게 옳았다.
나는 여태껏 살면서 누굴 때려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험악한 용병들과 어울리며, 여차하면 사람까지 죽이는 짓거리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일생 평화롭게 살다가 갑자기 그런 일이 뚝딱 가능한 부류라면…. 아마 태생부터 단단히 미친 인간이 아니었을까.
그래, 여기는 운 나쁘게 머리에 총 맞아도 리트라이 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니까.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최대한 몸을 사리는 편이 옳았다.
‘무사안일 안전제일. 역시 몸 성한 게 최고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주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이쪽을 불렀다.
“포장 주문 나왔어. 합성 페페로니 2박스~!”
“네, 사장님!”
겹쳐 쌓은 피자 박스를 들고 다가오는 갈색 머리의 여성. 제니는 이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장님이었다.
카일라를 통해 소개받았는데, 다행히 이쪽을 좋게 봐줘서 일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성품도 무척 친근해서 며칠 만에 내 이름을 애칭으로 바꿔 부를 정도였다.
“이브가 온 뒤로 매출이 얼마나 늘었는지 모르겠다니까. 처음 봤을 때부터 그럴 것 같긴 했지만. 완전 복덩이야.”
“아하하….”
이브니아. 이브. 여전히 익숙지 않은 이름이었다. 그렇지만 이젠 이런 것도 적응해야겠지. 이곳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말이다.
아무튼, 일자리를 얻게 되면서 당분간의 생활비 걱정은 어느 정도 해결한 듯했다.
이쯤에서 누군가는 그렇게 물어볼 수도 있다.
몇 푼 안 되는 시급 받으면서 하루 종일 아르바이트나 할 바에야, 차라리 카일라에게 했던 것처럼 ‘능력’ 을 활용하는 편이 훨씬 쉽게 돈을 벌지 않을까?
나 역시 그런 고민을 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발동하는 [성녀의 능력]은 스스로도 그 정체를 모르는 힘이다. 원리를 설명할 수도 없고, 한계를 장담하기도 어려웠다.
타인에게 대가를 받고서 사용하기란 여러모로 불확실한 점이 많았다.
카일라의 경우에는 아주 특수한 예외라고 볼 수 있다. 그때는 정말 벼랑 끝에서 뭐라도 붙잡아야 하는 심정이었으니까. 일이 잘 풀려서 망정이지, 효과를 명확히 보증하지도 못하는 힘은 역시 섣불리 거래 목적으로 쓸만한 수단은 아니었다.
때문에 해당 아이디어는 일단 보류.
지금으로서는 평범한 파트타임 일자리 정도가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기왕이면 남들의 눈에 띄지 않고 지낼 수 있으면 더더욱 좋고.’
다시 말하지만 [오메가 디트로이트]는 위험한 도시였다.
특히 기업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이 하층 거리는, 용병과 카르텔들이 활개 치는 우범지대.
가뜩이나 외모조차 이렇게 바뀌었는데, 정체불명의 초능력 같은 걸 사용해서 쓸데없는 관심을 끄는 행동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슬아슬하다. 범죄의 표적이 될 수도 있었다. 원본 게임에서도 유명인이라든지, 인플루언서의 납치극 같은 사건이 임무로 빈번하게 일어나곤 했으니까.
차라리 평범하게 일하면서 지내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렇다고 또 너무 겁먹을 필요까진 없겠지만.’
아무리 위험하다지만 결국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란 말이다.
치안이 아무리 막장이어도, 얌전히 사는 민간인에게까지 피해가 가는 경우는 생각보다 잘 없었다.
높은 살인율도 대부분 범죄 조직 간의 항쟁에서 비롯된 수치. 경찰들도 명목상이지만 안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정말 심각한 소요 사태 시에는 시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서 질서를 바로잡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까 선만 잘 지키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를테면 갱단 같은 것에 엮인다든지, 그런 무모한 행동만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위험할 일은 없으리라고.
그땐 분명 그렇게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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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명이 모여있는 강당. 그곳에선 한껏 살벌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자리마다 앉아 있는 사람들의 면면부터가 그러했다.
전투형 의체로 험악하게 개조된 몸뚱이.
위협, 혹은 과시를 위한 문신과, 쉴 새 없이 연기를 뿜어내는 흡입기로 탁해진 공기까지.
서로를 가늠하며 저마다의 빛깔로 번들거리는 의안 속에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흘러나왔다.
모인 얼굴 하나하나가 거리에서 내로라하는 용병들. 혹은 악명높은 폭력 조직의 표식을 새긴 이들도 많았기에.
그 모습은 흡사 인화성 물질로 가득 찬 창고를 연상시켰다.
실수로라도 한 번 스파크가 튀면 모조리 터져버릴 듯한, 그런 긴장감이 맴도는 순간이었다.
덜컹-
뒤늦게 열린 출입문의 소음에 일순간 모두의 주목이 쏠렸다.
그 시선들 너머에서 등장한 그림자는 생뚱맞게도 자그만 소녀의 실루엣이었다.
한 발짝 걸어 나오자 반짝이는 백은의 머리칼과 순진무구한 하늘빛 눈동자가 드러났다.
이 장소의 분위기와 극명하게 동떨어진 외견의 가련함.
언뜻 보기에 길 잃은 미아가 잘못된 장소에 발을 들인 모습처럼 보였다.
그래서인지 잠깐의 정적이 흐르는 공간.
소녀를 본 사내 중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다가갔다.
터벅- 터벅-.
“…….”
“………..”
그리고 그녀의 앞에 꿇어앉으며 고개를 숙였다.
“광휘를 봅니다.”
그 목소리가 울려퍼진 순간 이 자리의 모두가 똑같이 무릎을 꿇었다.
누군가는 나직히 인삿말을 중얼거리고, 또 다른 이는 한 치의 미동도 없이 고개를 기울였지만 단 하나의 공통점.
모두 소녀를 대하는 태도가 지극히 경건했다.
작은 발걸음이 인파 사이를 지나칠 때마다.
두려울 것 없던 거리의 무법자들이, 혹여나 감히 옷자락 하나가 스칠세라 몸가짐을 가다듬고 공손히 조아리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공간을 가로질러서 마침내 연단 위에 올라선 소녀.
이미 한껏 소음을 억누른 공간에 더 이상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모여든 시선 속에는 알 수 없는 기대와 열성이 반짝거렸다.
잠깐의 정적 너머로 마침내 소녀가 입을 열었다.
“자-, 다 같이 기도합시다. 자애로운 광휘시여, 어둠 속에서도 우리를 인도하시고, 길을 잃은 아이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 모두가 두 눈을 감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기도문을 읊조렸다.
보는 것처럼, 여기 모인 전원은 하나의 종교를 믿는 신도들이었다.
[긍휼한 광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구 하나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이었지만, 이제는 그들 모두가 섬기는 신의 존함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몸소 기적을 체험했던 사람들이니까.
과학으로도 불가능할 경이를 일으켜 오염된 영혼과 육신을 정화시켜 주었던 초자연적인 은총.
하지만 그런 불가사의보다도, 모두의 마음을 감화시킨 것은 귀천을 가리지 않고 그들에게 손 내밀어 준 온정이었다.
이전까지는 아무도 이 뒷골목의 주민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쓰레기를 치우듯 하류로 밀어 넣어져, 그 틈바구니에서 저들끼리 아둥바둥 살아가야 했을 인생들. 그런 삶을 뒤바꿀 기회를 위해서 기계에게 영혼까지 팔았건만, 도리어 그 탓에 더더욱 파멸로 달려가던 불쌍한 운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렇게 죽어가던 이들을 구원한 것은 소녀의 모습으로 다가온 신의 자비였다.
무엇 하나 무상으로 제공되지 않는 이 도시에서, 신은 모두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주어진 은혜.
생의 끝자락에서 대가 없이 내밀어진 온정어린 손길은 많은 사람들의 가치관을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그때부터 [광휘교]는 하층 거리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구원을 바라고, 의지할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매기에 모인 이들.
은혜를 받은 이들이 하나둘 모여서 기도회가 되고, 더욱 모여들어 점차 구색을 갖춘 끝에 종교의 이름을 갖추게 된 집단.
그 신흥 교단의 수장이자, [뒷골목의 성녀]라고 불리게 된 소녀가….
바로 나라는 사실이 문제였지만.
‘대체 왜 일이 이렇게 된 거야…!’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수십 명의 용병과 무법자들이 제게 고개를 조아리는 비현실적인 광경 속에서, 나는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신도들의 면면은 다시 봐도 살벌한 얼굴들이다. 그야 당연히 진짜 범죄 조직의 인물조차 존재했으니까. 혹여나 밤거리에서 마주쳤다간 그대로 까무러칠 험악한 인상으로 내게만큼은 공손히 기도를 올리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질 않았다.
지금도 뒷덜미에 식은땀이 선연하게 흐르고 있었다.
사실 이쪽은 [성녀] 행세 따위 하고 싶지도, 할 생각조차 못했다.
분명 이 도시에 천천히 적응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이 불과 몇 주 전의 일인데.
눈 깜짝할 사이에 듣도 보도 못한 사이비 종교의 수장 행세를 하게 되버리다니.
뭔가 일이 잘못되어도 진짜, 이렇게까지 잘못될 수 있기나 한 걸까?
대체 어디서부터 꼬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답답한 심정을 속으로나마 힘껏 소리치던 그 순간, 나는 예배당의 맨 앞줄에 앉아 있던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는 금빛 눈동자가 인상적인 도회적인 미인이었다.
로우번으로 단정하게 묶은 흑발과 차분한 정장은 겉보기로 따지자면 커리어우먼, 아니, 냉철한 엘리트 수사관에 가까우려나.
어떤 순간에서도 표정 변화가 옅은 얼굴은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웃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을 정도였다.
생각을 읽을 수 없는 그 심해처럼 깊은 눈동자를 마주 바라보며, 일순간 나는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의 계기는, 그녀와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